마지막 유목제국 준가리아
청나라는1598년 건주여진의 누르하치가 7개의 여진부족을 통합후 칭키스칸 동생의 후예인 호르친부의 몽골인과 결혼동맹으로 맺어진 만주,몽골 귀족의 연합 국가라고 봐야한다.
1626년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시는 내몽골을 점령하여 징키스칸의 정통성을 계승한 린단칸을 정복하고 그의 부인과 자식으로부터 역대 원나라 황제가 사용했던 옥쇄를 물려받아 만주인,내몽골인,요하의 중국인 대표로부터 3개 부족의 황제로 선출되어 국호를 대청으로 하였다.
린단칸의 아들 에제이는 홍타이시의 둘째 사위가 되고 그의 부인 5명은 모두 몽골인이었다. 내몽고의 16부는 그가 몽골칸의 대를 이은 것으로 인정하였다.사실 현재의 몽골은 독립한 외몽골보다 내몽골의 인구가 더 많다.즉 몽골의 주류를 흡수하여 소수인 만주인이 몽골과 연합하여 청을 건국할 수 있었다.
이후 몽골은 어떵게 되었을까? 내몽골(차하르)을 제외한 외몽고(할하몽골)와 티벳 지역의 몽골인은 부족 형태로 건재하였으며 칭키스칸의 후예들은 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흥망을 거듭하고 인도의 무굴리스탄,유럽의 크림칸국등 19세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16세기 중순 몽골의 좌익의 일부였던 할하는 북몽골로 옮겨갔다. 이들은 남쪽 내몽골의 여러부가 청나라 밑으로 들어간 후에도 세첸칸,투시에트칸,자삭트칸의 3부로 남아 북쪽의 부리야트,오이라트와 함께 독립하였다.
오이라트는 명나라 말기인 1600년대 초반에 다시 부흥하게 된다. 명·청 교체기에 몽골은 정치적으로 막북(幕北, 외몽골), 막남(幕南, 내몽골), 막서(幕西, 오이라트)로 나뉘어 있었다. 만주족이 청을 세워 한족의 중원을 지배하기 이전에 손을 잡은 몽골족은 막남 몽골이었다. 막북 몽골도 청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했지만, 막서의 오이라트만은 강희제 이전에는 부족단위의 독자적인 연맹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이라트는 초로스, 도르베트, 호쇼트,토르구트로 나뉘어 할하의 자삭트칸에 복종되었다.이중 토르구트는 볼가강으로 이주하였으며 호쇼트도 청해로 옮겨 청해 호쇼트가 되었다. 남은 초로스와 도르베트부는 원래 오이라트의 좌익이었기 때문에 준가르라 불리우게 되었다.
이 준가루부에서 에센 타이시의 후손인 바아토르 홍타이시가 나타나 이들을 이끌다가 1653년 그의 아들 셍게가 1671년 배다른 형제에게 살해되자 바아토르 홍타이시의 4째아들인 갈간이 티벳에서 승려로 있다가 1676년 환속하여 호쇼트의 지원을 받아 토벌하고 형의 형수를 취하였다. 이윽고 갈단은 호쇼트부등을 합쳐 오이라트의 수장이 되어 1679년에 하미,투르판을 1684년에 카자흐의 타쉬겐트까지 점령하였다.
이후 갈단은 자삭트칸과 투시에트칸 사이에 분쟁이 있는 할하에 진출하여 오이라트를 지배했던 투시에트칸을 복속하고 오르콘, 툴라,케룰렌강을 따라 만주까지 진출하였다.1690년에는 북경 입북300㎞ 지점에서 청군을 격파하였다.
이때 청은 러시아의 남하로 분쟁을 겨고 있었고,마침 칼카의 몽골인들은 러시아의 압박을 피해청나라에 보호를 요청하여 1691년 칼카의 칸들과 젭춘 담바로부터 청에게 충성 조약을 체결했다.
1695년 갈단은 청나라의 보호에 있던 호르친부를 정벌하기위해 출병하였으나 청나라의 강희제에게 크게 패하였다. 마침 모국인 준가리아에서 셍게의 아들인 체왕랍탄이 쿠테타를 일의켜 갈단은 갈데가 없어졌다. 과거 오이라트를 이끌던 아릭 부케가 차카타이에게 배신당하여 쿠빌라이 칸에게 패한 신세가 된 것이다. 결국 갈단칸은 초라하게 몽골 고원을 떠들다가 1697년 5월 사망하였다.
이후 청나라 군은 1720년에 준가리아로정벌하고 친 청나라 성향의 달라이라마를 세웠으나 1745년 준가리아에 반란이 일어나자 정벌하고 오이라트부의 아무사나칸을 옹립하였으나 자립하려하자 1747년 재정벌하였다.
결국 3년간의 전쟁으로 오이라트의 전 인구 60만중 절반은 살육하고 나머지는 도망가거나 천연두로 사망하여 준가리아은 임자없이 버려졌다. 이때에 볼가강에 있던 오이라트의 토르구트를 귀향시켜 정착하게 하였다.
이후 청나라와 러시아는 유목민족의 이동을 제한하고 초원에 농민을 이주시켜 더 이상의 유목민족은 재기할 수 없었으며 이때 기마병보다 화기 위주의 전술로 갈단과 체왕랍탄은 18세기의 근대화한 청군에 패한 것이다.
청은 갈단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외몽골과 신장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외몽골의 칼카 부족들은 1691년 원(元)나라 시대에 상도(上都)였던 옛터 도런 놀에 모여 연맹을 결성하고, 청조에 복속을 약속하게 된다. 청은 또 준가르가 지배하던 하미, 둔황, 투르판를 점령하고 둔전(屯田)을 설치했다. 청의 판도가 오늘날 신장지역까지 펼쳐진 것은 강희제 때였다.
이를 계기로 청나라는 몽골 지배의 내정은 더욱 심해져 이 지역의 정치 권력을 분산시켜 몽골은 더 이상 청나라의 위협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청나라의 철저한 서몽골의 말살 정책으로 현재의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 지역을 제외한 서몽골의 몽골은 현재도 자치현 정도로 소규모로 분산되어 살고 있으며 만주족의 일파인 시버족을 서몽골 지역의 수비를 위해 이주시켜 만주족이 만주에서는 한족에 동화 되어가지만 시버족은 아지도 만주족의 고유 문화를 가직한체 고립되어 살고있다.
◈ 오이라트는 원(元)대에 같은 몽골족이면서도 색목인(色目人)으로 분류되어 우대받았다. 명대에 몽골 전체를 통일하며 위세를 떨쳤고, 1449년 ‘토목의 변’을 일으켜 명나라의 정통제(正統帝)를 인질로 잡기도 했다. 그후 오이라트는 내분으로 혼란에 빠져 약화되었고, 다른 몽골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후퇴했다. 알탄 칸이 등장할 때 오이라트는 몽골에 복속되었다.
오이라트는 명나라 말기인 1600년대 초반에 다시 부흥하게 된다. 명·청 교체기에 몽골은 정치적으로 막북(幕北, 외몽골), 막남(幕南, 내몽골), 막서(幕西, 오이라트)로 나뉘어 있었다. 만주족이 청을 세워 한족의 중원을 지배하기 이전에 손을 잡은 몽골족은 막남 몽골이었다. 막북 몽골도 청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했지만, 막서의 오이라트만은 강희제 이전에는 부족단위의 독자적인 연맹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이라트(Oirat)는 준가르와 호쇼트, 토르구트, 도르베트 등 네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중 준가르 부족이 가장 강력했는데, 17세기초 카라쿨라라는 인물이 나타나 오이라트족을 단합시켰다. 카라쿨라가 준가르를 세운 것은 후금이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황제라고 칭하기(1636) 바로 직전인 1634년이었다. 준가르는 막북의 칼카 부족을 공격하는 한편 티베트 고원을 침공해 달라이라마를 제압함과 동시에 티베트 불교를 받아 들였다. 이어 카자흐 칸국을 공격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영토를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