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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가 가장 많은 나라, ‘수단’

frog.ko 2020. 10. 22. 08:07

수단의 북부지역인 나파타와 메로에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전자는 기원전 8~7세기의 나파타 왕국의 것으로 18 , 후자는 기원전 3세기 이후의 것으로 약 50 기가 있다.

나파타 [Napata]는 고대 왕국 쿠시의 수도(BC 750~590)이다. 나일강 제4폭포에서 하류 쪽인 지금의 수단 북부 지방 쿠라이마 부근에 있었다. 수단의 나파타와 메로에 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누비아로 돌아와서 얼마 동안 나파타 왕국 혹은 메로에 왕국으로 존속했던 제25왕조가 이곳에 피라미드를 건축한 것이다.

 

나파타는 도시라기보다는 카리마 지역 남동부, 즉 누리(Nuri)에서 쿠루까지 뻗어 있는 넓은 지역이다. 카르마 문화의 발상지였으나 제18왕조 초기부터 이집트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나파타에서 중요한 지점인 바르콜 구릉은 이집트 신왕국(기원전 1521~1075) 때부터 아몬 신()의 옥좌가 있는 성산(聖山)으로 여겨졌으며 구릉 아래에 신전 유적이 몇 군데 남아 있다. 그곳에서 투트모세 3(기원전 1479~1425 재위)의 기념비가 발견되었는데 성채의 일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멘호테프 2(기원전 1426~1400 재위)는 아시아인 포로들을 그 성벽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기원전 10세기초 이집트는 기울어가고 있었으며 하()이집트에서는 리비아 용병들의 약탈이 심해져갔다. 추론에 따르면 테베에 있던 아몬 신의 제사장들 가운데 많은 수가 나파타에 망명해서 쿠시의 토착 군주들에게 이집트 문화를 전하는 한편 타락한 이집트를 정복하도록 부추긴 듯하다.

 

(BC 750). 쿠시의 군주 가운데 최초로 알려진 사람은 알라라(기원전 770~750)이고 그 후손들이 이집트 제25왕조를 세워 그전의 신()왕국이 폐지했던 고대 이집트의 관습과 신앙을 복원했다고 한다. 이때 나파타는 고대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쿠시 왕들은 티로스·시돈·이스라엘·유다와 모의해 아시리아인들을 축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왕을 피라미드에 매장하는 이집트 풍습이 쿠시에 전해져 쿠루와 누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누리에는 가장 큰 피라미드인 타하르카 왕(기원전 690~664 재위)의 피라미드가 있다. 타하르카 왕은 나파타와 그밖의 몇몇 이집트식 신전을 여러 채 지었으며, 기원전 671년 아시리아인들에게 패해 이집트에서 쫓겨났다.

 

타하르카가 패배한 뒤 쿠시 통치자들은 이집트 재정복을 별렀으나 그들의 꿈은 제26왕조(사이스)때 꺾이고 말았다. 26왕조는 기원전 592년 그리스·카리아 용병들로 이루어진 원정군을 보내 나파타를 약탈했다. 그뒤 쿠시는 도읍을 나일 강 건너편에 있는 메로에로 옮겼으나 나파타는 계속종교적 중심 도시로 남았으며 기원전 315년까지는 누리에 왕릉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