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식민제국의 흔적, 아프리카계 유럽인

frog.ko 2020. 11. 3. 01:16

아프리카계 유럽인은 대체로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현재 유럽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의 상당수는 식민지 국민으로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오늘날에도 이민 러시는 상당히 이어지고 있어 이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통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사하라 이북 마그레브에서 온 백인인 아랍인들과 사하라 이남의 흑인들로 나뉜다.

 

아랍인들은 대부분 무슬림인지라 기독교와 세속주의가 공존하는 유럽에서 꽤 골치덩이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연 44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으로 이민왔다.

 

지네딘 지단이 대표적인 아프리카계 유럽인이다. 그러나 백인 계통은 무슬림이라 티를 내지 않는 한 라틴계들과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보통은 흑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민권 운동 등으로 계속 투쟁해 평등하려고 노력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는 달리 아직 정치적, 사회적으론 파워가 없는 편이다.

 

아프리카계 식민지가 유독 많았던 영국이나 프랑스에 많다. 영국엔 약 140, 프랑스는 약 350~500만 수준이다.

 

작은 나라지만 콩고와 르완다를 식민지로 뒀던 벨기에에도 약 55만 명의 흑인이 살며 앙골라,모잠비크와 카보베르데를 식민지로 뒀던 포르투갈에는 약 70만 명의 흑인이 산다.적도기니를 식민지로 뒀던 스페인과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뒀던 이탈리아에도 각각 약 110만 명 수준 이며 독일에도 약 90만 가량의 아프리카계 인구가 산다.

 

식민지를 둔 적이 없는 스위스도 인구의 약 1% 수준인 7만이 흑인이다.

 

그 외에도 유럽 전역에 아프리카계는 골고루 이민을 오고 있다. 그에 따른 인종차별 문제 및 이슬람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독일 흑인

처음으로 독일에 흑인이 온 것은 17세기였다. 18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세운 동인도회사가 흑인들을 노예로 유럽에 데려왔고 1720년에 안톤 빌헬름 아모(Anton Wilhelm Amo)가 독일에선 흑인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1884년부터 1918년 사이에 독일 제국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만들면서 식민지 출신 흑인들이 넘어오게 된다. 이들은 나치가 들어서자 여권을 박탈당하는 등 인종차별을 당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카리브 출신의 영국 흑인이나 프랑스 흑인, 미국에서 건너온 미국 흑인 등이 독일에서 근무했고 이들은 독일 현지인들과 자녀를 낳기도 했다. 이들은 본국에서 키워지기도 했으나 독일인 어머니 밑에서 미혼모 자녀로 자라기도 했다.

 

1981년에 독일이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독일 흑인의 숫자는 늘어난다. 주로 운동 선수 등에 많이 포진한다. 이러한 이민자 출신 선수들 중 모국의 국적을 선택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다. 케빈-프린스 보아텡이나 막심 슈포-모팅은 아프리카계라 각각 가나와 카메룬을, 미국계 독일 흑인인 줄리언 그린과 게디온 젤라램은 미국으로 국적을 전환했다. 아무래도 독일 국대에서 뛰는데 한계가 많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르로이 사네나 게랄드 아사모아, 제롬 보아텡 등의 반례도 있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디스코 그룹인 보니 엠(Boney M.)도 자메이카에서 독일로 건너온 흑인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서 흑인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유는 나치 독일의 인종차별적 정책 때문에 흑인들이 거주할 여건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고 독일령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식민지가 비교적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계 독일인의 인구수는 90만명이 훌쩍 넘었으며 그중 절반은 마그레브국가 출신들이며 절반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계 출신들이다.

 

영국 흑인

 

아프리카 혈통의 영국인들을 말한다. 넓게 말할 때는 꼭 영국인이 아니라 영국에 거주 중인 아프리카계 흑인을 말하기도 하며, 자메이카계처럼 카리브해 출신으로 영국으로 온 아프리카계들도 포함시킨다.

 

Black이라는 용어가 딱지를 씌우냐는 문제도 있지만 비유럽 계통의 영국인을 가리키는 말이 명확히 정해진 게 없어 위키백과 영어판에서도 그냥 Black British라고 표기한다.

 

유럽내 흑인들 중 프랑스 흑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2011년에는 영국 인구의 3.3%를 차지했다. 2001년에 110만에서 2011년에 190만으로 늘었다. 이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거고 시민권이 없는 영주권자나 체류자 등을 합하면 거의 300만에 이른다.

 

71%가 기독교 신자이다. 이슬람은 9% 정도. 미국 흑인들이 이슬람 친화적인 성향이 있는 것과 다르게 카리브해 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흑인 우월주의 성향이 강한 탓에 파키 배싱(Paki Bashing) 같은 때 백인과 같이 협조해 참여하기도 했다.

 

아프리카계 이탈리아인

 

모로코, 이집트, 알제리나 튀니지, 과거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리비아 출신으로 라틴계통인 이탈리아인들과 외모상 크게 다를 건 없다.

 

다만 종교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이슬람이다. 물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경우도 없진 않고, 이탈리아인 중에서도 이슬람에 입교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구분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64만 명으로 아프리카계 이탈리아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지정학적으로 위치가 가깝기 때문에 온 케이스들. 모로코 출신이 45만으로 가장 많고 튀니지가 10, 이집트 9만이다.

 

포르투갈 흑인

 

포르투갈인은 금발벽안부터 흑발흑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원전 12세기 경 상인과 항해사였던 페니키아인이 아시아 서쪽 끄트머리인 레바논 및 팔레스타인에서 출발해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도착하고 뒤이어 아프리카아시아어족 혈통인 이베리아인이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왔다.

 

기원전 7세기 경에는 상인이었던 그리스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사군툼 등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나 포르투갈과는 거리가 닫지 못했다. 대신 기원전 6세기 경 페니키아인이 현 포르투갈 영토에 정착하고 그 뒤 켈트인이 오늘날의 갈리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정착을 한다. 이들은 혼혈화가 진행이 되어 기원전 3세기전 현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 서쪽은 루시타니, 켈티키, 쿠네이 등의 부족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기원전 2세기 로마 제국에 식민지에 편입되면서 모두 싸잡아 루시타니아인으로 불리운게 시초이다.

 

또한 로마의 정복 이후 페니키아 민족의 단일국가인 카르타고가 로마에 피배하자 페니키아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었으며 기존 이베리아 원주민인 이베리아인과 이주한 켈트인의 혼혈로 켈트-이베리아인들과 켈트인과 혼혈이 안된 루시타니아인들이 모두 현 포르투갈 영토에서 공존하다 로마인들과 혼혈이 진행이 되었고 5세기경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로마인들이 게르만족에게 점령당하자 게르만 민족인 수에비족과 반달족, 알란족이 분할해 지배했다.

 

그 후 바로 같은 게르만계인 서고트족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가 점령되어 서고트 왕국이 탄생한다. 이 서고트 왕국이 들어서도 대부분 이베리아 주민들은 라틴계 혈통에 켈트와 페니키아가 섞인 로마계 이베리아인이었고 고트족은 극소수 왕족들뿐이라 이들은 라틴어를 공용어로 쓰고 인명, 지명 등을 로마식을 흉내낸다. 그러나 이 고트족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가문이 많았는지 스페인어 및 포르투갈어 인명에 게르만계 흔적이 많이 남았다. 그 다음에는 카탈루냐 및 바스크 성씨들이다.

 

7세기 무슬림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를 제외하고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베리아는 이슬람화/아랍화하였다. 그러자 남아있던 게르만족+로마인으로 구성된 기독교 계 왕국들이 레콩키스타로 9세기는 포르투 중심으로 한 북부를 시작으로 11세기는 포르투갈 중부를 12세기와 13세기에는 리스본지역과 포르투갈 남부를 모두 회복했다.

 

이리하여 포르투갈인은 페니키아, 이베리아인, 켈트,라틴 ,게르만, 무어,베르베르인, 세파르딤 유대인 등 다양한 혼혈로 이루어진 민족이 되었으며 이는 포르투갈 한 영토에서 독일, 러시아, 아일랜드, 앵글로색슨처럼 금발벽안인 사람부터 모로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북부 지중해 연안이나 시리아, 그리스, 터키, 이라크 등 같이 흑발흑안의 외모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게 된 것이다.

 

물론 평균적인 포르투갈인 외모는 비교적 켈트, 게르만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포르투갈 북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터키, 모로코, 팔레스타인 등 처럼 게르만, 슬라브족에 비해 비교적 작은 체구이며 흑발흑안에 구리빛 피부에 눈과 코가 비교적 크고 수염이나 털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위에 서술했듯이 포르투갈인 남자들은 항해를 하면서 브라질, 아프리카, 인도 등이나 마카오, 동티모르 등 동남아시아 에서 현지인 여자들과 결혼을 하여 코카소이드 피와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의 흑인종, 아시아계인 중국인 등이 섞인 혼혈을 만들었다.

 

대표적 그룹이 마카오의 포르투갈과 중국 혼혈 원주민인 마카이엔사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본토에 살던 남자들, 특히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귀족층 남성 상당수가 해외로 나가 정착해 돌아오지 못하자, 결혼할 남자마저 부족해져 식민지 영토나 해방 노예 출신 비백인 남성과 포르투갈 현지 여성과의 결혼하는 일이 흔했다.

 

이로 인한 혼혈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원래 이베리아 반도는 고대부터 다양한 혼혈이 이루어진 지역이다. 또 스페인에서는 식민지 출신 주민들을 순혈주의를 가지고 차별한 것과 다르게 대항해시대 이후 포르투갈은 흑인 노예와 식민지 주민의 유입이 많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포르투갈인들은 DNA 검사를 실시하면 게르만, 켈트, 라틴, 이베리아, 아랍, 베르베르 등 코카소이드 인종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흑인, 남아시아인, 동남아시아인, 중국인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 DNA도 함께 검출된다.

 

현대에도 이주민들은 끊이지 않아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중 하나였던 데쿠는 브라질 출신 이주민이며 일본계 브라질인 혈통으로 일본인과 라틴계가 반반 섞인 외형이다. 그리고 에데르 역시 기니비사우 출신 이민자이다.

 

일단 포르투갈은 1975년까지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 식민지를 유지하여 해외영토를 보유한 국가였으며 게다가 독재국가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이 과거처럼 노예 제도가 있는 잔혹한 식민제국이 아닌 여러 민족/문화와 융합할 수 있는 공화국이라는 것을 주변 국가에 마케팅을 할 필요성이 다분하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에 거주한 주민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었으며 당연 그들도 그당시에는 '포르투갈인'이었다.

 

반대로 코카소이드 포르투갈인들도 이웃 타유럽 국가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했지만 그 당시 포르투갈령 해외영토인 앙골라, 모잠비크, 고아, 마카오 등지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다 식민지 전쟁이후 포르투갈 식민지가 모두 나가 떨어지자 이미 포르투갈 본토로 유입된 구식민지 출신인 주민들을 당장 내쫓을 수가 없었으니 이들은 자연스럽게 '포르투갈인'으로 코카소이드 포르투갈인들과 섞여 같이 집계가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었다.

 

프랑스 흑인

유럽내 흑인들 중 가장 규모가 크지만 프랑스에선 인종이나 민족별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불법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근거하고 1958년 수정된 프랑스 헌법이 이를 금하기 때문. 그 때문에 추정치를 쓰며 적게는 350만에서 많게는 550만 정도로 추정한다.

 

프랑스 흑인 5명 중 1명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왔고 나머지는 영국 흑인의 상당수와 마찬가지로 카리브에서 이주해왔다.

 

프랑스에 흑인이 산 것은 꽤 오래 전 일로 프랑스 혁명 당시에 프랑스 흑인으로 구성된 군 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많은 흑인이 건너왔다.

 

프랑스 흑인보다 더 많은 소수집단은 북아프리카인들로 흔히 무어나 마그레브, 아랍인 등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백인들이다. 이자벨 아자니가 대표적인 북아프리카 출신 혈통이다. 물론 북아프리카계 프랑스인 중에는 투아레그족 같은 흑백혼혈도 있다.

 

정치적인 파워는 대개 서구 국가의 흑인 커뮤니티가 그렇듯 아직은 큰 영향력 발휘가 힘들다. 대신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많이 활동한다. 특히 프랑스 축구 대표팀엔 흑인이 많다.

 

그래도 유럽 내에서는 프랑스가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가장 덜한 편이고 흑인들이 가장 인권을 존중받고 가장 활약하는 나라이다.

 

유로 2008 당시의 프랑스 대표팀. 엔트리 가운데 흑인이 14명에 백인이 9명이다. 사실 백인 중에서도 카림 벤제마와 사미르 나스리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계 혈통이다.

 

수리남계 네덜란드인

수리남계 네덜란드인은 수리남에서 네덜란드 본토로 이민 온 사람들 및 그 후손을 말한다.

 

네덜란드령 기아나에는 원주민 및 노동력 보충을 위해 유입된 아프리카 흑인, 흑인 노예 무역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이후로는 계약 노동자(사실상 노예)로 아시아에서 온 자바인, 남인도인, 중국인 등이 통혼하여 인종 구성이 대단히 복잡했는데, 이는 수리남계 네덜란드인의 복잡다단한 인종 구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피부색이 검은 편이지만 이목구비는 흑인과 다르게 얼굴이 위아래로 상당히 긴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키는 작지만 안면 상하 길이가 긴 편인 자바인의 이목구비를 물려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수리남계 네덜란드인들은 주 사용 언어는 네덜란드어이지만, 수리남식 힌디어, 수리남식 자바어 및 잡다한 크레올 피진어를 사용하는 인구도 상당하며 현재도 힌두교나 이슬람을 믿는 인구가 많다.

 

수리남인들의 본격적인 네덜란드 이민 시작은 1차 대전 직후인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인구가 최소 35만여 명에 달한다. 수리남 본토의 수리남인이 58만여 명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수리남과 네덜란드 사이의 거리와 본격적인 이민 역사가 짧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네덜란드 화교 중에서 6% 정도는 수리남 화교 조상을 두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