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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족의 후예..오세티야 공화국

frog.ko 2020. 12. 25. 01:13

오세트인은 이란계 민족으로 9세기경 북캅카스 지역에 알라니아 왕국을 세운 알란족의 후예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정교회 신도인 점이 특징이다.

 

오세트인은 크게 이론인, 디고르인, 쿠다르인으로 나뉜다. 이론인과 디고르인은 북오세티야의 주요 민족으로 이론인은 러시아인의 영향으로 동방 정교를 믿지만 소수민족인 디고르인은 카바르다인의 영향을 받아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다.

 

쿠다르인은 남오세티야의 민족으로, 오래전에는 아르돈 강 상류나 다리알 협곡에서 살다가 17세기부터 캅카스와 조지아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오늘날 조지아와 분쟁중인 민족이기도 하다.

 

국명이 굳이 남()오세티야인 이유는 러시아 연방령 북오세티야가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 시절에는 남북 오세티야는 같은 민족인데도 문자가 달랐다(북쪽은 키릴, 남쪽은 조지아 문자). 결국 1954년에 키릴 문자로 통일되었다.

 

북오세티야도 그리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구 소련 시절, 스탈린이 반러 성향이 짙은 체첸-인구시인을 중앙 아시아로 몰아내버리고 인구시인의 터전이었던 프리고로드니 지역을 러시아에 충성하던 오세트인들에게 멋대로 넘긴 것이다.

 

흐루쇼프 시대에 인구시인이 귀환하여 이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오세트인들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 결과가 1992년 발생한 인구시인-오세트인 분쟁. 러시아는 당연히 오세트쪽을 지원해 주었고 애꿎은 이 지역 인구시 민간인들만 피해를 봤다.

 

오세티야 분열의 원인제공을 한 것은 소련이다. 소련이 건국되면서 북오세티야는 1921년에 성립된 산악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거쳐 1924년에 러시아 쪽에 자치주로(1936년에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됨.), 남오세티야는 조지아 쪽에 자치주로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소련 붕괴 직후 발생한 1차 남오세티야 전쟁이다. 애초에 거대한 캅카스 산맥을 경계로 한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둘로 나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남오세티야인들도 러시아 제국과 볼셰비키가 캅카스 일대를 점령해 나갈 때 '향도' 노릇한, 캅카스 민족들에게는 러시아 제국과 공산당의 앞잡이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 공으로 블라디미르 레닌이 오세트인들을 위한 북오세티야 자치주를 세워줬다.

 

조지아인 입장에서는 민족 구분선을 러시아 연방령인 북오세티야에만 그으면 되는데, 그루지야 공화국의 영토에 남오세티야 자치주까지 설치한 게 모든 전쟁의 발단이 된 것이다.

 

조지아인과 오세트인은 오랜 기간의 통혼으로 상당히 동화되었으나, 소련이 붕괴된 후 조지아인과 오세트인 양측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조지아의 초대 대통령인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는 남오세티야의 자치권을 폐지하자 남오세티야를 분노하게 만들어 반란이 일어나고 만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해체되면서 조지아인-오세트인 분쟁으로, 조지아 본토 영내의 오세트인 10만명이 도피하였고, 23천 명의 조지아인이 남오세티야에서 도피하였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지금 조지아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캅카스 내에서 거의 드물게 정교회를 믿으면서 친러파 민족이라 아예 러시아 시민권을 주고 옹호하는 것이다.

 

남오세티야 전쟁의 발단은 조지아가 이 곳에 군사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일어났다.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상태라지만 조지아는 당연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 압하스 공화국과 아자리야는 조지아 내에서 자치 공화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남오세티야는 그렇지도 못한 상태이다.

 

조지아-오세티야 분쟁

조지아-오세티야 분쟁은 1989년에 전개되어 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발전한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자치 지역에서의 민족적-정치적 충돌이다. 휴전이 체결과 무수한 평화적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 충돌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소수의 무장 사건들이 계속된다. 20088, 조지아와 남오세티야 간의 외교적 긴장감과 충돌들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을 발발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