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 아즈리엘 바이츠만1874년 11월 27일 ~ 1952년 11월 9일)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으로, 아세톤을 만든 후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베를린대학교와 프리브르에대학교 등에서 화학을 배우고, 1901년 이후에는 제네바 및 맨체스터 대학에서 유기화학·생화학을 가르쳤다. 그 사이 시오니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현대 시오니즘의 창설자 T.헤르츨을 뒤이은 지도적 지위를 확보하였다.1906년 영국에 건너가 제1차 세계대전하의 영국에서 폭약제조에 쓰이는 아세톤의 대량생산법을 개발하였다.아세톤은 전쟁 중에는 소총 탄환을 비롯한 여러 가지 탄환에 쓰이는 무연 화약을 만드는 데 대량으로 소비되었다.
1914년까지는 나무를 밀폐된 용기에 넣고 가열하여 생성되는 증기에서 아세톤을 얻었다. 그러나 아세톤을 대량으로 얻기 위해서는 많은 나무가 소요되었으므로, 영국은 아세톤의 제조를 위해서 나무를 대량 수입해야 했다.그러던 중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선박으로 나무를 수송하는 데 제한을 받게 되어 아세톤을 제조할 수 없게 되자, 나무 이외의 다른 물질에서 아세톤을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세톤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증류 공장에서 실험을 하였고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후, 옥수수로부터 얻어지는 당에서 한꺼번에 0.5톤의 아세톤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 냈다..바이츠 만은 그의 아세톤 연구 관계로 영국의 지도자로 있던 정치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특히 당시 영국 외교장관이던 밸푸어와는 역사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영국 정부는 바이츠만의 공로에 보답코자 그의 소원을 물었다. 그는 조국의 재건을 요구했고,영국은 그에 적극 협조할 것을 동의하여, 마침내 1917년 유태인 지도자들과 절충 끝에 ‘밸푸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이츠만은 1920∼1931년, 1935∼1946년 세계시오니스트연맹 총재로 선출되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진력하였으며,1948년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위임통치가 종료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