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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백인 공화국 로디지아

frog.ko 2020. 10. 26. 17:11

1965년부터 1979년까지 존재했던 국가. 1965년 영국에서 독립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와 마찬가지로 다수 흑인을 배제하며 백인만이 참정권을 가지는 백인 국가였다.

 

짐바브웨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고, 한때 영국 식민지로 로디지아(Rhodesia)라고 불리웠던 나라,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설적인 골프선수 닉 프라이스(Nick Price)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 보다는 37년간이나 장기 집권하다가 궁정반란 성격의 쿠데타에 의해 쫓겨나게 된 93세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의 나라로 더 알려져 있다.

로디자아의 국명의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는 광산업의 대부이자, 장사꾼이었다. 1853년에 영국에서 지주출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건강이 좋지 않아 따듯한 남아프리카로 요양을 갔다. 목화 농장을 운영하던 형의 집으로 요양을 하던 그는 농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에 눈을 돌린다.

마침 1871년 남아프리카 킴벌리 지역에서 요하네스와 디데릭 드비어 형제가 자신들의 농지에서 83.5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발견했고, 이후 많은 광산업자들이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 킴벌리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18살이던 세실 로즈도 작은 회사를 차려 광산업자들에게 물을 공급하며 많은 이윤을 남겼다.

1888년 세실 로즈는 당대 유럽을 휘어잡고 있던 유태계 금융가문인 로스차일드(Rothschild)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킴벌리 지역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인수해 나갔다. 그는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업체였던 바나토 다이아몬드 광산회사를 통합해 드비어스 광산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오늘날 국제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드비어스(De Beers) 브랜드의 시초다.

로즈는 다이아몬드 사업을 바탕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영국의 케이프 식민정부 의원, 재무장관이 되었고, 1890년에는 케이프 식민정부 총리에 올랐다.

세실 로즈는 영국이 새로운 땅을 확보해야 영국인들에 토지와 일자리를 나눠주고 공산품의 판로를 열수 있다고 주장한 전형적인 제국주의자였다. 그의 꿈은 남쪽의 케이프 식민지에서 북쪽 카이로(이집트)까지 아프리카를 종(縱)으로 영국식민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영국 본국 정치인들을 설득해 ‘대영 남아프리카 회사’(BSAC: British South Africa Company)를 설립했다. 말이 회사지, 이 회사는 경찰력도 보유했다. 경찰은 사실상 군인이었고, 동인도회사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침략군 조직이었다. 세실 로즈는 BSAC를 개인조직처럼 부렸다.

세실로즈는 금과 다이아몬드를 찾아 북쪽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의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지역이다.

1894년 세실 로즈는 BSAC을 앞세워 원정군을 북쪽 내륙으로 파견해 영국 본토의 4.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토지를 빼앗아 BSAC 지배하에 두었다. 그의 군대는 로디지아를 점령하기 위해 은데벨레족과 두차례의 전쟁(1893~1894, 1896~1897)을 벌였다.

이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맥심 기관총(Maxim gun)이 사용되었다. 1차 전쟁에서 현지 부족은 10만명의 병력(이중 2만명이 소총수)을 투입했다. BSAC는 750명에 타부족 지원병 700명이 고작이었다. 숫자상으론 토착부족이 100대1로 압도했지만, 기관총 앞에는 추풍낙엽이었다. 아프리카 왕국과 토착인들에겐 전쟁이었지만, 기관총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에겐 사냥이었다.

싸움은 일방적으로 끝났다. 로즈의 군대는 게임을 즐기듯 잠베지 강까지 점령했다. 회사가 정복한 이 땅을 식민자들은 세실 로즈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로즈의 땅)라고 명명했다. 개인 영지나 다름 없었다.

세실 로즈의 회사(BSAC)가 차지한 땅을 남북으로 나눠 남(南)로디지아, 북(北)로디지아라고 했다. 북로디지아는 지금의 잠비아, 남로디지아는 지금의 짐바브웨에 해당한다.

초기에 영국은 로디지아를 직접 통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치의회를 구성하거나 총독이 파견되지 않고, 세실 로즈가 만든 회사(BSAC)가 통치했다. 현지 부족장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BSAC가 경찰력으로 통제하는 동인도회사의 인도 지배방식을 준용햇다. 따라서 로디지아는 국명이 아니라 세실 로즈의 회사가 관리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였다.

1970년부터의 공식 명칭은 로디지아 공화국(The Republic of Rhodesia)은 이전의 영국령 남로디지아 식민지가 19651111일에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을 때 채택하였던 이름이다. 로디지라라는 이름은 또한 1979"짐바브웨 로디지아"의 설립과 더불어 사용되었다. 1979년에서 1980년까지 남로디지아로서 식민지 상태로 잠깐 복귀한 뒤, 로디지아는 19804월에 짐바브웨라는 이름의 독립국가가 되었다.

 

 

로디지아라는 국명(國名)은 세실 로즈 (Cecil John Rhodes)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로디지아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던 내륙국이었으며, 남부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 1979년까지 소수 영국계 백인이 나라를 다스렸으며 흑인의 정치 참여를 인정치 않았던 탓에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받지 못했다가, 1980년에 짐바브웨 공화국으로 되면서 국제적인 독립 승인을 얻었다. 1964년 이전의 "로디지아"라는 이름은 현대의 잠비아, 말라위, 짐바브웨의 영토를 가리킨다.

 

1970년대 초중반까지는, 영국으로부터의 백인 이민 덕에 로디지아의 백인 인구는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3%에 불과한 백인(주로 영국계) 인구가 96%의 흑인을 지배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로디지아는 여성들까지도 무장시켜야 할 정도였다. 

 

1970년 3월 로디지아 백인들은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을 거쳐 이언 스미스(Ian Smith)를 총리로 선출했다. 소수의 백인들은 마지막 저항으로 흑인 게릴라의 공세에 대응했다. 백인정부는 의무병력제를 시행하고 병역기간도 늘렸다. 하지만 22만의 백인인구로 아무리 군대를 징집해도 2만을 끌어모으기 힘들었다. 유엔의 경제 제재로 무기 수입도 어려워 졌다.

스미스의 백인정부는 마침내 전세계에 용병을 모집했다. 그 때 그린베레나 SAS, 프랑스 외인부대 등 각국의 특수부대원들이나 프로용병이 돈을 보고 뛰어들었고, 이들에 힘입어 일시적으로 흑인 반군의 공세를 저지할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들어가면서 백인정권은 손을 들었다. 1979년 백인 정부가 흑인 반군과 협상을 통해 흑인 정부에게 정권을 이양하려 투표를 하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