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발트해의 강국, 스웨던 제국

frog.ko 2020. 10. 30. 23:18

스웨덴 제국(열강의 시대)이란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발틱 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유럽의 패권국으로 부상했던 시절의 스웨덴 왕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즉위한 1611년에 제국이 성립되어, 1721년 대북방 전쟁 종전과 함께 붕괴할 때까지 존재한 국가로 본다.

1523년 스웨덴은 덴마크와의 스웨덴 해방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칼마르 동맹에서 독립했다. 이를 계기로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었다.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한 구스타브 1세 바사(재위 1523-1560)1718년까지 계속된 바사 왕조의 계보를 확립하고 루터교로 이행하는 종교개혁을 강행하였다. 그의 후계자들 치세에 스웨덴은 루터교, 개혁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에서 커다란 난항을 겪었다.

 

1611년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즉위와 함께 스웨덴은 루터교로 복귀하였다. 구스타브 2세는 발트 해를 스웨덴의 바다로 만드는 한편 독일 개신교 측의 후견인으로 30년 전쟁(1618-1648)에 참전하였으나 전신 각부에 집중 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스웨덴은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해외 식민지들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1638년에 델라웨어 강 계곡에 뉴스웨덴이 세워졌고, 나중에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몇몇 섬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해안가에 스웨덴의 요새와 무역소들이 잇따라 지어지기도 하였으나, 정착민들의 이주는 극히 미미하였다.

 

초강대국 스웨덴(스웨덴 제국 혹은 발트 제국)은 약 1세기 가량 계속되었으나 칼 12세가 강행한 러시아와의 대북방 전쟁(1700-1721)이 실패로 끝나 와해되었다.

 

이후 소강 상태를 거쳐 18세기 후반에 구스타브 3세가 국가 중흥에 많은 공헌을 했으나 끝내 암살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갔다.

 

스웨덴의 대외 전쟁 참가는 나폴레옹 전쟁이 마지막이었는데, 빈 회의 결과 핀란드를 상실하고 노르웨이를 얻었다. 그 후 대규모 군사활동은 거의 대부분 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입헌군주제는 1849년에 실현되었다.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하여 현재의 영토가 확정되었다.

 

▣구스타브 3세(Gustav III, 1746년 1월 24일 ~ 1792년 3월 29일)는 스웨덴 왕국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의 제2대 국왕(재위: 1771년 2월 12일 ~ 1792년 3월 29일)이다. 러시아 제국과 덴마크와 싸워 승리하여 유럽에서 명성을 높였다. 또한 한스 폰 페르센을 신하로, 프랑스와 우호 관계를 다졌다. 구스타브 3세의 시대는 스웨덴의 중흥의 시대이며, 또한 문화 면에서 “로코코 시대”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스웨덴의 국왕으로 국왕이 된 이후 왕당파의 지지아래 근위병을 임용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칼 12세  이후로 50년간 지속되던 의원내각제 체제를 뒤엎고 전제군주제로 회귀시켜버린다. 이로 인해 스웨덴의 자유의 시대(Frihetstiden)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당연히 의회파는 이런 전제적 통치에 반발을 하고 결국 구스타프 3세는  1792년 3월 29일  암살당했다. 
칼마르 동맹:1397년 스웨덴의 칼마르에서 이루어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삼국의 연합. 1523년에 해체되었다.
목적:독일세력이 뭉친 한자동맹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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