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해적에서 영웅으로 .. 드레이크

frog.ko 2020. 11. 1. 21:13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 1540~1596)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영국인들은 그를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Armada)를 격파한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그가 해적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그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는 그가 영국의 이익을 위해 노략질을 했고, 그의 약탈 대상이 스페인 선박과 해외 식민지였다는데서 기인한다.

 

그는 영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인물이고, 당대의 최강 스페인 해군을 무찌른 해군제독이다. 그의 인생은 휘황찬란하고, 흥미진진하다. 그러기에 영국인들이 그를 추앙한다.

 

영국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레이크는 어려서부터 낡은 배에서 생활했다. 13세에 선원 생활을 시작하여 아메리카와 유럽을 오가며 노예를 사고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멕시코 앞바다에서 에스파냐 배들의 습격을 받아 물건과 배를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목숨만 겨우 건진 그는 에스파냐에 복수를 다짐했어요. 이때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해적이 되는 건 정당하다며 해적 허가증(사략 허가증·privateer's license)까지 내주었어요. 국가가 공식적으로 해적을 인정해준 것이에요.

 

1572년부터 에스파냐 함대를 향한 드레이크의 해적질은 대담해져 해적질을 한 후에는 바람과 물결을 이용해 교묘하게 에스파냐 함대를 따돌리고, 그들의 식민지를 습격하기도 했다. 에스파냐는 배를 더 크게 만들고 대포로 무장했지만 드레이크를 당해내지 못했다.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에스파냐의 보물선을 공격하여 황금을 비롯한 수많은 재물을 약탈했지요. 이렇게 빼앗은 금은보화로 그는 영국 왕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드레이크는 에스파냐 해역을 따라 항해하던 중 1577년부터 1580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세계 일주까지 하게 되었어요. 마젤란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마젤란은 항해 도중 필리핀에서 사망했으니, 드레이크는 자신의 배로 끝까지 항해에 성공한 첫 번째 선장이 되었다.

드레이크에게 당한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2세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즉시 영국에 항의하며 해적 드레이크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지요. 그러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드레이크를 궁으로 불러 영웅이라 부르며, 귀족 작위까지 수여했다.

 

남의 나라 배를 노략질하던 해적 드레이크가 영국 귀족인 '드레이크경()'이 된 것이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분노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가톨릭 신자인 펠리페 2세는 신교를 믿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었다. 영국을 차지한 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펠리페 2세는 1588년 무적함대(無敵艦隊)'를 편성했다. 영국이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네덜란드를 지원한 것도 분노를 키웠다.

 

무적함대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주력 함대를 격파한 최강 전력이다. 군사력만 보면 골리앗과 다윗 싸움이었다영국은 변칙전술로 대응해 재미를 본다. 작전권을 쥔 해적왕 드레이크의 작품이다. 부하들도 대부분 약탈로 잔뼈가 굵은 해적이어서 손발이 척척 맞았다.

 

스페인 군대는 바다와 인연이 없는 육군 중심으로 짜였다. 영국 입성 후 육상전을 고려한 조처다. 이 작전은 헛발질로 드러난다. 스페인군은 상륙에 실패해 바다에서만 싸운 것이다. 영국 게릴라전에 밀린 데다 날씨마저 불리했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르고 장거리포를 장착한 영국 함대는 치고 빠지기 공격을 퍼부었다. 배 위에서 백병전을 펼치려던 무적함대의 허를 찌른 전술이다.

 

기상이변으로 생긴 강한 북풍은 영국 편이었다. 무적함대는 바람을 안고 항해하느라 싸우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승부처는 프랑스 칼레 해역이었다. 영국군이 태풍을 피해 칼레에 정박한 무적함대를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둔 것이다. 칼레해전은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다.

 

이 전쟁을 계기로 영국과 스페인 운명은 정반대가 된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발판을 마련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후 1589년 드레이크는 함선을 이끌고 당시 스페인에 합병되어 있던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공격했지만, 의도하는대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스페인 함대 armada

1595년 그는 은인자중하던 호킨스와 함께 카리브해 원정에 나섰다. 도중에 호킨스는 병사했다. 드레이크는 파나파 지협을 다시 공격했지만, 스페인군이 철저하게 방어했기 때문에 후퇴를 해야 했다. 그는 15961월 파나마 연해에서 이질로 쓰러져 파란만장한 인생을 끝맺었다.

 

▣ 실제 영국 함대와의 교전으로 잃은 배는 3척에 불과하다. 나머지 배는 태풍으로 말미암은 비전투 손실로 침몰했다.

무적함대는 메리 1세 여왕( 잉글랜드 왕국 및 아일랜드 왕국의 여왕)의 남편이었던 펠리페 2세 왕이 파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