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중앙아시아의 동서문명 교차로 , 페르가나 계곡

frog.ko 2020. 11. 27. 03:43

톈산 산맥과 알라이 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분지 지역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중요한 교통 요지. 면적은 2km² 정도로 넓은 편은 아니지만, 거의 14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 코칸드, 나망간, 마르길란, 페르가나,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의 오시와 잘랄아바드, 타지키스탄의 후잔드(호젠트) 등 수그드 지역들이 있다.

 

분지의 대부분은 우즈베키스탄 영토로, 타슈켄트 동쪽에서 키르기스스탄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시르다리야 강(약사르테스 강)의 상류 지역이기도 하며, 천산 산맥이 동부 경계, 히사르 산맥이 남부 경계를 이룬다. 한편 키르기스스탄은 계곡을 둘러싼 상류 지역을, 타지키스탄은 계곡의 하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세 나라의 영토가 한 지역에 서로 걸쳐 있다보니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이라는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여있던 지역을 1924년 소비에트 연방이 민족을 단위로 하여 3개의 소비에트로 쪼개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원래 국경이 나타나기 전에는 같은 페르가나 지역이었다. 하지만 페르가나 계곡은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타지크인이 확고한 민족 정체성 없이 경제적·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살아가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위적인 구분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켰다.

 

시장이 있는 도시 지역과 관개 농업 지역에는 정주민(sart)인 우즈벡인이 다수 거주하고, 그 주변부에서 키르기스인이 유목 생활을 하고 타지크인이 반농반목을 하는 형태였는데 이를 소비에트끼리 나눠가지게 하려다보니 민족과 소비에트의 불일치가 생기게 된 것. 결국 수많은 월경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키르기스스탄 내부에는 소흐, 샤히마르단, 잔가일, 총카라 4개의 우즈베키스탄 월경지와 바루흐, (西) 칼라차 2개의 타지키스탄 월경지가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내에는 타지키스탄 월경지인 사르박이 있다.

 

중국 한무제(재위 기원전 141~ 기원전 87)가 북방 유목기마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천마의 고향이 바로 여기 페르가나 계곡이다. 말들의 체격이 중국 신장에서 보았던 말들보다 더 우람하고, 힘이 세게 생겼다. 당시 한나라에서 대완국(大宛國)으로 불렀던 땅이다. 북쪽으로는 오손국(烏孫國)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페르가나 밸리는 우즈베키스탄 코칸드까지 시르다리야강을 따라 수백킬로나 이어진다.

 

현재의 페르가나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는 마르길란시가 있다. 이곳은 고대 페르가나의 중심 지역이었다. 주변을 흐르는 시르다리야가 풍요로운 오아시스를 만들어 주었고, 중국에서 서방으로 향하는 실크로드로 사막을 건너온 상인들은 이곳에서 상업과 휴식을 병행하는 중심지였다.

 

트란스옥시아나

중앙아시아 서쪽의 아무다리야 강(Amu Dar'ya) 강과 시르다리야 강(Syr Dar'ya) 사이에 있는 땅으로 전체적으로 지대가 낮고 평탄하며, 건조하지만 강이 흐르는 곳은 토지가 비옥했다. 또한 비단길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으므로 고대부터 농업과 상업이 발달해있었다.

 

트란스옥시아나는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유목민들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교두보이기도 했으므로 그 침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5~6세기 사산 왕조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에프탈이나 돌궐 제국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일대를 페르시아어로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만큼 튀르크인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아직 건재한 돌궐 부족들과 카를룩 카간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트란스옥시아나는 8세기 들어 사산 왕조를 멸망시킨 아랍 무슬림의 이슬람화로 의해 이 지역에 거주하던 돌궐인들은 전부 무슬림으로 전환되었다. 압바스 왕조의 동진으로 위협을 느낀 당은 둔황지역으로 진출하려는 압바스 군대를 막아섰다.

 

하지만 압바스 왕조가 탈라스 전투에서 당을 무너뜨리면서 확고한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주도세력은 칼리파들이 통치하는 아랍 중심지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에서는 페르시아인들이, ()에서는 튀르크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독자적인 발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만 왕조, 카라한 왕조, 가즈니 왕조, 셀주크 왕조 등 여러 강국들이 출현하였는데, 특히 셀주크 왕조는 이란은 물론 이라크, 아나톨리아, 힌두스탄까지 세력을 뻗치는 강대국이 되었다.

 

셀주크 왕조가 약화된 후에는 그 세력에서 이어진 호라즘 왕조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가 몽골 제국의 출현으로 비단길의 중심지라는 입지가 강해졌다. 이후 이지역은 일 칸국에게 다스려지게 되는데,일칸국이 산산히 붕괴되고 티무르 제국이 등장하여 트란스옥시아나를 점령했다.하지만 티무르 제국 역시 16세기경 우즈베크족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샤이바니 칸 (조치의 5남 샤이반의 후손)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문화적으로도 풍요롭게 되었다.

 

샤이바니 칸 사후 우즈베크 삼칸국(히바칸국, 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이 건국됐다.

 

 

▣키르기스스탄 내부에는 소흐, 샤히마르단, 잔가일, 총카라 4개의 우즈베키스탄 월경지와 바루흐, 서(西) 칼라차 2개의 타지키스탄 월경지가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내에는 타지키스탄 월경지인 사르박이 있다. 위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키르기스스탄도 우즈베키스탄 내에 바라크라는 월경지가 있다.

 

 

키르기스스탄 영토

페르가나 계곡에는 작은 마을인 바락(인구 627명)이라는 고립된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은 우즈벡 영토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오쉬(키르기스스탄)에서 코드자바드(우즈베키스탄)까지 키르기스-우즈벡 국경에서 안디잔 방향으로 북서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도로에 위치해 있다.

우즈베키스탄 영토

키르기스스탄에는 4개의 우즈베키스탄 영토가 있습니다. 그 중 두 곳은 소크(125평방마일, 인구 4만~7만 명; 99%가 타지크인, 나머지는 우즈벡인)와 샤키마르단(35평방마일, 인구 5,100명, 91%가 우즈벡인, 나머지는 우즈벡인)입니다. 키르기스). 나머지 두 개는 Chong-Kara(대략 2마일 x 0.6마일)와 Changyayyl의 작은 영토입니다. 종카라(Chong-Kara)는 우즈베크 국경과 속(Sokh) 영토 사이의 속(Sokh) 강에 위치해 있습니다. 장야일(Jangyayyl)은 바켄(Batken)에서 동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으며 칼미온(Khalmion) 근처 키르기스-우즈베크 국경의 북쪽 돌출부에 있습니다.

타지키스탄 영토

또한 키르기스스탄 내에는 타지키스탄에 속한 두 개의 영토가 있습니다: 보루크(37-50평방마일, 인구 23,000~29,000명, 타지크인 95%와 키르기스인 5%, 17개 마을에 분포), 이스파라 남쪽 28마일 오른쪽 강둑에 위치 Karafshin 강과 Kairagach의 Kyrgyz 기차역 근처의 작은 정착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