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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르족(카자르족)

frog.ko 2020. 12. 12. 08:35

서기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지금의 캅카스 산맥 북부와 러시아 남부인 우크라이나, 볼가 강 하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튀르크계 주민들이 세운 강대한 유목 제국이다.

 

그 영토는 동서로는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우랄 강에, 남북으로는 볼가 강 중류에서 북 캅카스와 크림 반도에 이르렀다. 

 

서기 7세기 말부터 흥기한 아랍 제국과 1백 년 동안, 격렬한 전쟁을 벌여 그들이 카프카스 산맥 이북으로 세력을 뻗치는 것을 막아냈다. 그로써 러시아 남부와 동유럽의 이슬람화를 수백 년 이상 늦추었다고 평가되며, 로마 제국의 아나톨리아 전선에 가해지는 부담을 일정 수준 덜어주어 제국의 안정에 기여했다.

 

하자르 제국의 체제는 830년대 들어 크게 변화하게 된다. 이 시기 마자르 집단이 폰토스 초원으로 이주하여 하자르 카간국의 서쪽 영토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비잔티움 제국 역시 하자르 제국을 공격하였고, 하자르 제국의 중심지 역시 기근이 있었다. 이를 막아낸 인물이 유대계 튀르크인 군 사령관 불란이었다. 불란은 여러 사건으로 약해진 카간을 대신해 하자르 제국의 권력을 장악하여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권좌에 오른 불란은 하자르 카간국의 유대교화 정책을 추진했다. 861년 경에는 하자르의 카간도 유대교를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불란은 자신의 지위를 단순한 군 사령관에서 왕으로 끌어 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하자르 제국의 2중 왕 체제의 시작으로 보인다. 10세기가 될 무렵 하자르 국가 지배층의 유대교화되었다.

 

한편, 10세기 들어 하자르 제국에는 또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하자르 카간국이 점차 아랍 제국의 이슬람 전파로 인해 이슬람 종교화가 되자 비잔티움 제국은 상업적으로 고립되게 된다.

 

이에 비잔티움 제국은 하자르 카간국의 지배하에 있던 루스 카간국과 협력했다. 본래 루스 카간국은 키예프에서 하자르, 아랍으로 이어지는 교역망의 일원이었다. 결국 투르크 민족인 오구즈 유목민은 하자르 제국의 수도 사르켈을 점령했다.

 

9세기 초반 산하의 마자르족이 독립하면서 이들의 국력에 타격을 입히고 결정적으로 9세기 말 바이킹족의 일파인 루스들에게 흑해와 북유럽을 잇는 하천 교역로를 빼앗기면서 급속히 몰락했다. 965년에는 키예프 루스의 왕 스비아토슬라프가 카자르의 여러 도시들을 쓸어버렸고 969년에 수도 아틸이 함락되었다. 하자르 신민들 상당수는 루스인들에 의해 노예로 사로잡혀 압바스 왕조와 후우마이야 왕조로 팔려나가고, 하자르 칸국은 소국으로 전락한 후 동방에서 온 다른 튀르크 부족들에게 멸망하였다. 이들의 영토는 키예프 루스, 페체네그와 쿠만에게 흡수되었다. 하자르 지배층의 상당수는 셀주크와 함께 중앙아시아로 도망쳐서 셀주크 튀르크의 지배층이 되었다

618년경  ~  1048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