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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에게 찍힌 나라..'호라즘 제국' (1077 ~ 1231년)

frog.ko 2020. 12. 15. 19:35

호라즘은 아무다리야 강 하류의 비옥한 저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북으로는 아랄해, 동으로는 키질쿰 사막, 서로는 우스튜르트 고원, 남으로는 카라쿰 사막과 접한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일부로 간주되며, 현대 국경으로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북부에 해당한다.

호라즘 왕조는 12~13세기에 카스피 해에서 페르시아 만 연안까지 지배했던 이슬람 왕국이다. 아무다리야 강 하류 유역, 지금의 히바에 1077년에 세워져 1231년까지 존속하였다. 셀주크 왕조의 부장 아누시티긴의 아들 쿠트브 웃딘 무함마드가 술탄에서 독립하여 우르겐치를 수도로 하여 건국했다.

 

몽골보다 12년 정도 앞선 신생제국 호라즘은 당시 실크로드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칭기즈칸은 동쪽에서 가장 큰 세력이던 금나라를 1216년 굴복시켰다. 이후 그는 서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1218년, 그는 호라즘 왕국의 샤 무하마드 2세에게 사절단을 보냈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통행을 재개하자는 것이었다.

 

무하마드 2세는 기꺼이 조약에 서명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몽골 상인들이 호라즘의 북동쪽에 있던 오트라르라는 도시에 도착해 물건을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그곳 총독이 몽골 상인들을 스파이로 몰아 전부 살해했던 것이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칭기즈칸은 무하마드 2세에게 정식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고 책임자 처벌과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그런데 무하마드 2세는 사절단의 몇 명을 죽이고 몇 명은 얼굴을 흉측하게 망가뜨려 돌려보냈다. 1219년 마침내 칭기즈칸은 호라즘 정벌을 위해 15만 명의 병력을 모았다. 무하마드 2세는 칭기즈칸의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하마드 2세는 40만 명의 정예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영토에서 싸운다는 이점도 있었다. 호라즘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과 몽골군의 예상 침입 경로 사이에는 사람들이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혹독한 조건의 키질쿰(Kyzylkum) 사막과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시르다리야 강이 놓여 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칭기즈칸을 들판에서 풀이나 뜯는 야만인으로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칭기즈칸은 몽골군을 4개 부대로 나눈 후 주요 부대를 아들들에게 맡겼다. 우군은 장남인 주치가 지휘하고, 좌군은 2남인 차가타이와 3남인 오고타이가, 중군은 칭기즈칸 자신과 4남인 툴루이가, 별동대는 제베가 이끌었다.

칭기즈칸은 오트라르 성을 포위했다. 성채는 견고했다. 성을 사수하는 군사 2만 명도 정예병이었다. 성을 포위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오트라르를 사수하던 대장 카라차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병력을 거느리고 성을 빠져나와 몽골군에 투항했다. 하지만 그들이 맞이한 것은 죽음뿐이었다.



총독 이날추크도 칭기즈칸에게 잡혀왔다. 칭기즈칸은 즉시 그를 참살해 사절단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했다.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칭기즈칸은 호라즘 왕 무함마드에게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몽골군은 오트라르를 알아볼 수 없게 파괴했다. 모든 건물은 부서졌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기술자를 제외한 모든 시민이 살해됐다.



그리고 곧바로 칭기즈칸은 키질쿰 사막을 넘어 부하라로 향했다. 키질쿰 사막은 무하마드 2세가 믿고 있었던 최후의 자연방벽이었다.

 

사실상 칭기즈칸 이전에는 키질쿰뿐만 아니라 대체로 큰 규모의 사막을 횡단해 정복전쟁에 성공한 군대가 없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죽음의 키질쿰 사막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무하마드 2세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4월 초에 들어서였고, 그때 이미 칭기즈칸은 남쪽 사막 끝에 나타나 누루타를 함락시키고 부하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칭기즈칸은 부하라의 성문 한쪽의 포위를 풀어 주둔군을 성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했다. 결국 이 유인작전은 성공했고 411일에 부하라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불과 한 달 반 만에 수적으로 열세인 몽골군이 30만에 달하는 적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여세를 몰아 칭기즈칸은 끝까지 상대를 추격해 호라즘의 마지막 요새 사마르칸트에 있는 11만의 투르크와 타직 병사들을 섬멸했다. 사마르칸트를 탈출한 무하마드 2세는 칭기즈칸의 추격대에 의해 정신 없이 쫓기다가 카스피해의 작은 섬 아베스쿤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굶주림 속에서 죽고 말았다.

Khwarezmian Empire 1190-1220_(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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