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비 왕조(1501년 ~ 1736년)는 근세 이란을 지배한 시아파 왕조로 정식 명칭부터 사파비가 아니라 이란인데서 알 수 있 듯, 튀르크계인 아제르바이잔인들에 의해 건국되었으나 페르시아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사파비 왕조의 뿌리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련조직인 수피즘 단체에서 시작되었다. 그 단체의 지도자 이름이 '사파웃딘'이었으므로 단체 이름도 사파비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일개 영적 수련단체였으나 교주 자리가 아들에게 세습되고, 교주의 호위무사들은 군대로 성장했다.
초기에는 수니파에 가까웠으나, 시아파의 입단을 허용했고 시아파 교단원의 비중이 늘어 결국 완전히 시아파로 개종했다.
시아파로 개종한 후 페르시아 지역에서 핍박받는 시아파들을 자극하여 당시 이란을 지배하던 백양 왕조에 도전했으나 토벌당하였다.
사파비의 지도자도 살해당했으나 그 아들인 이스마일이 살아남았다. 사파비의 잔존세력은 비밀 지하단체로 몸을 숨긴 채 어린 이스마일을 실질적인 지도자로 추앙했다.
세력을 재건한 사파비 일파는 자신들을 핍박했던 백양 왕조를 비롯한 수니파 세력들에게 복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스마일은 이스마일 1세가 되어 타브리즈(이스파한으로 천도)를 수도로 사파비 왕조를 세웠다.
이스마일은 시아파 제7대 이맘의 자손으로서 1502년 아제르바이잔의 아크 코윤루 왕조를 꺾고, 타브리즈에서 독립했다. 그 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했다. 그는 아라비아어풍의 술탄 칭호를 배척하고 페르시아어의 존칭 '샤'를 사용하였으며, 또 12이맘파(派)를 국교로 정하는 등 이민족 지배에서 벗어난 이란 민족주의를 강조하였다.
시아파를 지도 정신으로 하는 이 왕조는 무굴 왕조나 우즈베크계의 칸국들과도 원정을 하기도 했었고 또는 수니파(派)의 오스만 제국과 대항하게 되어 투르크의 침입을 받아 천도하였다. 그러나 아바스 대제가 나오자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영국인의 지도로 군제(軍制) 개혁을 단행하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광대한 실지(失地)를 탈환하였다. 또 내정에도 빛나는 치적(治績)을 올려 수도 이스파한의 장려함은 유럽 세계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아바스 대제의 사후 사파비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다시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을때마다 영토를 잃게 된다.또 1722년에는 아프간족에게 수도를 점령당함으로써 사실상 쇠퇴하였으나 왕통(王統)은 11대 1736년까지 존속되었다. 이후 이란 지방은 18세기 말 카자르 왕조에 의해 재통일되었다.
▣카자르 왕조(1794년 ~ 1925년) → 팔라비 왕조(1925년 ~ 1979년)
카자르 제국은 투르크계 카자르족의 아가 모하마드가 잔드 왕국의 카림 칸이 죽은 후 독립하여 창건한 페르시아 제국이다. 테헤란에 수도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