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와 사우디는 역사적·이념적으로 형제에 비견될 만한 나라이다. 그러나 입헌왕정을 추구하는 듯한 카타르의 행보로 양국은 격하게 대립하고 있다.
카타르는 1970년대 독립한 소규모 국가이자 석유 부국으로서 이슬람권 내에서 국가 이미지 재고를 위해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및 알자지라 운영 등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도 쌓았으나, 세계 각지에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 단체를 지원하면서, 서구 국가들의 비공식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201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 하에 아랍에미리트, 예멘, 바레인, 이집트, 리비아 등 아랍권 6개국이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했다. 이어서 몰디브도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이들 국가들은 카타르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조직을 지원하며 안보를 불안하게 한다는 것을 단교 명분으로 내세웠다.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한 해당국들은 자국 내 카타르 외교관 철수를 명령하고 항공기와 선박 운항을 속속 중단시켰다.
6월 6일 저녁에는 요르단이 카타르와의 외교 관계를 격하시켰고, 6월 7일에는 모리타니 정부가 추가로 카타르와 단교했다.
카타르는 지속적으로 다른 중동 국가들과는 다른 노선을 보여왔다. 카타르는 알자지라라는 뉴스 채널을 운영해왔으며 친 이란 성향, 무슬림형제단에 우호적인 태도 등으로 중동 국가들에게 비난을 받아왔다. 탈레반이 정치권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카타르는 미국의 중동 최우방 전선으로 중동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가 주둔하는 곳이기도 하다.
단교를 선언한 7개국 중 이집트, 리비아, 몰디브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걸프 협력 회의 (GCC)의 회원국들이다. 수년동안 GCC 회원국들은 아랍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로 카타르와 충돌해왔다.
단교를 선언한 7개국들은 카타르가 테러를 지원하고 자국내 문제에 간섭하며 이란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갈등의 배경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핵심은 사우디와 카타르의 오랜 분쟁이다. 견원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쩌면 중동의 다양한 갈등 사례 중 가장 기이하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카타르 왕실인 알타니 가문의 조상은 사우디의 알사우드 왕실 가문과 매우 가까웠다. 18세기 중엽까지 아라비아반도 중부 내륙 네지드 지방에서 함께 살았다. 형제 관계에 비견될 만했다.
카타르는 1988년 소련과 독자 수교하면서 사우디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본격적인 갈등이 불거진 계기는 1995년 6월에 벌어진 카타르 왕정 쿠데타였다. 타밈 현 국왕의 아버지인 하마드 전 국왕이 자기 아버지 칼리파 국왕을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사우디를 비롯한 GCC 국가들은 카타르의 정변을 규탄하고 나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정적 승계는 모든 왕실의 핵심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왕실 권력 경쟁이 민감했던 사우디의 반발이 거셌다. 오만 한 곳만 예외였다. 카부스 국왕(술탄)은 1970년 영국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축출하고 왕이 되었다.
권력을 잡은 카타르의 하마드 국왕의 명분은 국가 개발이었다. 이란과 공유하는 걸프 해역에서 대규모 가스전이 발굴되자 하마드는 몸이 달았다. 결국 정변을 일으켰다. 선왕이 개발에 나서지 않고 걸프의 보수적 질서에 안주하려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란이 먼저 사우스파 가스전에서 개발 계획을 세우고 채굴을 시작하면 이를 공유하는 카타르의 노스필드 가스전의 매장량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 뻔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역내외 국가들의 퇴위 압박이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압박을 견뎌내며 왕실을 안정시킨 카타르는 달라졌다. 더 이상 사우디에 고분고분한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는 GCC 왕정국가들의 간섭에 염증을 느꼈다. 이후 카타르의 행보는 전통적 GCC 노선을 탈피한다. 나아가 걸프 왕실에 부담이 되는 노선을 펼치며 탈(脫)걸프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카타르는 걸프 해역에 갇힌 반도 국가다. 물리적으로는 대국 사우디와 접경하고 있다. 지리적 제약이 많다 보니 지정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일단 국제사회에서 지명도를 높였다.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를 지속적으로 유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6년 아시안게임, 2012년 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물론 2022년 월드컵 등 숨 가쁜 유치 외교에 나섰다.
또한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과는 외교 노선이 다른데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경우 와하브파의 본산으로 세계 각지에 와하브파 선교를 지원하고 반이란 반시아 노선을 추구한다면, 카타르의 경우 수니파 국가이긴 하지만 이란과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위치 때문에 안보상의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이란, 반시아 정책을 그대로 따르기 힘든 입장이다.
사실 카타르는 이웃나라들의 반군들에게 간접적으로 지원해 사이가 썩 좋지않았는데 바레인, 사우디, 이집트, UAE에 대해서는 카타르의 親 이란 행보 외에도 이들 국가의 반정부 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의 망명을 받아준 카타르를 마음에 들지 않았고 카타르왕가 소유의 언론인 알자지라가 중동 여론을 꽉잡고 다른 중동국가의 부패문제를 언급하거나 다른나라 정부군의 안좋은면만 집중적으로 보도해 여론전에 밀려서 패배하게 만든경우가 많고, 시리아 내전에서는 근본주의 반군을 지원해왔다.
카타르는 왜 이웃 왕실과 각을 세우면서까지 이슬람 정치집단을 지원하고 알자지라 같은 매체를 활용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이슬람권에 대한 정지 작업으로 보인다. 카타르는 중동 아랍권에서 앞으로 이슬람 세력이 득위(得位)하고 집권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카타르는 이슬람 입헌왕정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이슬람 이념과 정치인에 의해 지지되는 입헌왕정 모델을 설정하고 동시에 서방과도 잘 지내면서 온건함을 추구한다면 대단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절대왕정이 스스로 입헌왕정으로 전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하마드 전 국왕은 입헌왕정을 천명하며 아들 타밈 국왕에게 생전 양위를 완결했다. 이는 아랍 내부 거대한 판의 흐름과 시세를 읽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면, 이란이나 과거 이집트·이라크·시리아의 왕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음을 예견한 것이다.
대항민국과 카타르는 우리의 천연가스 최대 공급국으로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에 천연가스를 공급해왔다. 최근에는 우리 조선 3사와 사상 최대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선 건조 공간 확보 계약을 체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우리 경제를 들뜨게 하기도 했다. 또 오는 2027년까지 천연가스 63% 증산을 목표로 사상 최대 규모의 생산 시설 확장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카타르는 우리 건설 업계의 8대 시장이기도 하다. 사막 장미를 본뜬 독특한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소로 부상한 카타르 국립박물관도 우리 기업이 시공했으며 2022년 월드컵의 랜드마크가 될 루사일 플라자 타워도 한국 기업이 짓고 있다.
또한 카타르는 이러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FIFA에 돈다발을 퍼부어 논란이 되고 있다.
▣2017년 카타르 외교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