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은 오랫동안 무역의 중심지였다. 1500년대에 해상제국을 세웠던 포르투갈 제국이 잠시 처들어와서 무스카트의 해안가 지방을 150년간 지배했다. 이 후 인도양 무역을 포르투갈이 방해하면서 카타르와 페르시아 호르무즈 지방,인도 서부의 해안가 지방도 진출한다.
그러던 중 1650년 오만의 술탄 빈 사이프 알 아루비가 포르투갈인들을 축출하고 오만의 최초 왕조인 야루바 왕조를 연다. 이 때는 오만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며, 여러 가지 문화 유산들이 그 당시 세워졌다.
이 후 1730년대에 동아프리카 지방의 아주란 술탄국과 스와힐리 지방의 포르투갈인들을 역공하여 축출하고 계속 남진하여 19세기 초중반까지 아랍 유일의 해상제국을 이룬 오만 제국을 세웠다.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케냐, 잔지바르, 탄자니아의 해안 지역과 서,남쪽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예멘 남부 일부 지역등 아라비아 반도 남부 일대, 동쪽으로는 이란 남부, 심지어 오늘날 파키스탄 령인 발루치스탄과 신드의 해안가 지방 까지 진출했다.
그 당시 오만 제국은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 스페인과 더불어 노예 무역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오만의 지배를 받았던 탄자니아 등지에서는 지금도 오만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신밧드의 고향이 북부의 소하르 출신이라는 민담이 전해져 것도 이 때문. 그리고 오만 제국의 수도는 오만 본토가 아니라 오만 제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잔지바르였다. 해상 무역과 노예 무역으로 벌어들인 부가 이곳으로 몰린 이유다.
1740년대에 이란의 전쟁기계 나디르 샤가 처들와서 쑥대밭이 되고 잠시 정복당하였다. 수도가 잔지바르로 옮겨간 것도 이 시기. 그러나 사이드 가문을 중심으로 다시 이란인들을 축출하고 독립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사이드 왕조가 성립되었으나 술탄 사이드 빈 알 부사이드가 1856년 죽자 후계자 분쟁이 일어나 3번째 아들이 무스카트와 오만을 잇고 6번째 아들이 동아프리카 지역과 잔지바르 등을 접수해 오만 제국은 분할되었다.
이때부터 후계자 승계에 조정을 맡은 영국과 서구 열강들의 영향력이 강해져 오만에 내정간섭을 하는일이 잦았다. 1885년 경에 독일이 진출하여 탄자니아 지역에 독일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건설하여 영토를 강탈하고 소말리아 해안가는 이탈리아가 접수하였다. 영국-잔지바르 전쟁 결과 케냐를 비롯한 나머지 동아프리카 지역도 깨끗하게 분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