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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frog.ko 2021. 1. 2. 11:52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캅카스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수도는 바쿠다.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 이지만 러시아어도 자주 사용된다. 주민의 다수는 터키인과 유사한 아제르바이잔인이다.

민족적으로는 튀르크계의 아제르바이잔인이 인구의 90.6%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아제리인 외에도 레즈긴인(2.2%), 러시아인(1.8%), 아르메니아인, 아바르인, 타트족이 거주하고 있다.

 

동쪽은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러시아의 다게스탄 공화국, 서쪽으로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남쪽으로는 이란과 접경하며, 바다 없는 내륙국으로,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로 사실상 독립 상태에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문화가 비슷하며, 이웃 국가인 아르메니아계 주민의 나라 아르메니아의 남서쪽에는 아제르바이잔의 고립 영토이자 아제르바이잔의 자치 공화국인 나히체반 공화국이 있다.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터키전쟁 결과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며 1922년 소련에 가입했다.

 

산유국이기 때문에 '불의 나라'라는 이명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름에 걸맞게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분출하는 천연가스로 만들어진 불기둥들이 잘 알려져 있다.

 

지하에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자연 발화 불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원 개발로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야나르다그 언덕에 가면 10m 폭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볼 수 있다. 수도인 바쿠는 19세기 후반에는 세계 최초로 석유를 상업적으로 채굴한 곳으로 세계 석유 생산의 중심지로, 세계 석유 공급의 절반을 담당했었다.

 

영토의 20%가량이 지리적으로 동유럽에 속한다. 각종 정치적 국제 기구도 유럽 소속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고대와 중세에는 그리스 동로마 문화권, 근현대에는 동유럽권에 속해 문화적으로 유럽에 가까운 조지아나 아르메니아와 달리 아제르바이잔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페르시아·튀르크 문화권에 속했기 때문에 서아시아·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접점이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아제르바이잔을 오늘날에는 동유럽권으로 보는 이유는 19세기 이래로 러시아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UN이 규정하는 동유럽, 진분홍색이 동유럽이다. 분홍색은 모두 과거 냉전 당시 사회주의 진영에 소속된 국가들이다. 보라색은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의 영토중 지리적으로 동유럽에 속하는 부분이며 해당 세 국가들 역시 넓은 범위의 동유럽으로 간주한다.

이슬람이 다수이다. 이웃 나라 이란과 더불어 시아파(12이맘파)가 주류이다. 이란을 골수 시아파로 만든 사파비 왕조의 발원지도 이 아제르바이잔 지역이다.

 

터키나 중앙아시아, 요르단, 바레인, 레바논처럼 굉장히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특히 무종교/무신론/종교가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밝힌 인구 비율이 54%로 이슬람권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이슬람교 신자들도 라마단은 지켜도 특정 시간마다 절하는 모습은 안 보인다. 사실상 타 유럽국가와 비슷한 편이다.

 

국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이 들어가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소련 시절을 거치며 터키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세속화가 되어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국가같지 않다고 한다. 수도 바쿠를 여행간 외국인들이 유럽 어느 나라 동네 온 느낌이라고 할 정도이며 히잡은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런 이 나라도 계속되는 기독교 선교에 대한 반감 때문에 2012년부로 오래 전부터 거주해온 기독교인을 제외한 외국 기독교 선교를 일절 금지한다는 법을 통과했다. 물론 이 나라도 터키 영향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는 금지하며 단속하고 막는다.

 

아제르바이잔의 인구는 약 1,000만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란의 소수민족인 아제르바이잔인은 약 2,500만명이다. 즉, 아제르바이잔 본국보다 이란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인구가 훨씬 더 많다.

 

아제르바이잔 인구의 90%이상은 튀르크계 아제르바이잔인(아제리인)이며 다게스탄에도 거주하는 소수민족 레즈긴인, 소련 시절 이주해온 러시아인, 산악 지대에 거주하는 이란계 민족 탈리시인 및 타트인, 산악 유대인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거주한다.

 

터키와 두 개로 갈라진 하나의 나라만큼이나 가까운 혈맹인 이 나라 사람들은 특히 한국인을 좋아한다. 몽골/알타이계 뿌리에 공통점이 있어 음악, 풍습 등에서 닮은 점을 찾을 수도 있다. 터키인들이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이들은 우리를 친근하게 바라본다. 언어대학에는 중국어과나 일본어과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한국어과가 있었을 정도다.

 

아르메니아와는 서로 이웃하면서도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사이다. 종교적으로 아르메니아에서는 기독교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아르제바이잔은 이슬람 국가다. 인종적으로도 아르메니아에는 고대 로마시절부터 독자적인 왕국을 이룬 아르메니아 인이 주류인데 비해 아르제바이잔인은 투르크 족이다.

 

아르메니아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알려져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인 다대오(Thaddaeus)와 바돌로매(Bartholomew)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고대 아르메니아왕국은 로마제국에 앞서 서기 301년에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다.

 

인종적, 종교적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두 나라의 사연은 러시아와 구소련 지배를 받으면서 복잡하게 얽혔다.

 

두 나라의 영토 분쟁은 아르제바이잔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측에선 아르자흐(Artsakh), 아제르바이잔측은 카라바흐(Karabakh)라고 각각 부른다. 면적은 1만1,400㎢로, 경기도보다 약간 넓고, 산악 고원지대이어서 인구는 15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이 땅은 아르메니아의 땅이었다. 독자적 왕국을 형성했던 두 나라는 19세기초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분쟁의 불씨는 192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주면서 시작되었다. 소련으로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아르메니아를 약화시키고, 이웃 터키와 잘 지내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카프카즈 북쪽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은 코카서스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아르메니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소련은 이 고원지대를 아르제바이잔 공화국의 자치주로 편성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라고 불렀다.

 

소련 시절에도 아르메니아 공화국은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지만, 소련의 위세에 눌려 그럭저럭 넘어갔다.

 

1980년대말 소련이 흔들리고 연방내 민족들이 곳곳에서 독립 운동을 벌이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대표들은 1988년 2월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포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없애고 그 지역을 직할 통치했다.

 

이때부터 아르메니아와 아르제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을 놓고 6년 전쟁을 벌였다. 전쟁 기간에 카라바흐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아르메니아측은 아르제바이잔이 자행한 행위라고 주장했고, 아르제바이잔은 아르메니아계가 폭동을 일으켜 인명피해가 났다고 변명했다.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89년 12월 아르메니아 의회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합병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소련은 공화국의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그해 아르메니아인은 자국내 17만명의 아르제바이잔인을, 아르제바이잔은 35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서로 추방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그해 9월 2일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11월 4일 아르제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해 경제 봉쇄를 단행했다. 카르바흐는 1991년 12월 10일 국민투표를 거쳐 1992년 1월 6일 독립을 선포, 아르자흐 공화국(Republic of Artsakh)을 수립했다. 국명 자체를 아르메니아식으로 바꾼 것이다.

 

독립 후에도 분쟁이 일어났다. 1992년 2월 호잘르(Xocalı)시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군이 충돌해 전면전으로 확산되었다. 인구로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 비해 3배나 많고, 바쿠 유전도 확보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병력도 아제르바이잔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전투와 외교에서는 아르메니아가 이겼다. 아르메니아군은 파죽지세로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진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내 체첸 반군,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까지 지원을 받았지만, 연이어 전투에서 패했다. 6년 전쟁에서 아르메니아측은 4,592명이 전사했는데 비해 아제르바이잔은 2만5,000~3만명이 죽어 나갔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은 나고르노카라바흐(아르차흐)에 대한 영유권 문제로 두고 2020년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아르메니아-아르차흐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2020년 11월 8일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역사도시인 슈샤가 아제르바이잔군에 의해 탈환된 이후 아르메니아-아르차흐군이 수세에 몰렸고, 결국 11월 10일 현지시각으로 오전 1시에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가 아제르바이잔의 제안안을 전면 수용하는 사실상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1988.2.20-1994.5.16) 결과, 아르메니아 군은 나고르노카라바흐 뿐만 아니라 그 주변지역까지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약 10분의 1을 점령중이었다

위의 지도에서 초록색 지역이 조약상 아르차흐 공화국의 남은 영토이자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파견될 지역이다.

 

해당 지역이 아제르바이잔 내의 자치구 비슷하게 남을 건지 아니면 현 상태와 비슷하게 유지될지는 미지수이다.

 

일단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이전에 티롤같은 예를 들며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할 것을 제시했으나 아르메니아측은 전부 거부했다며 앞으로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은 바 있다.

 

하늘색 지역은 전쟁 중에 아제르바이잔이 점령한 지역들이자 지금도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다. 협정에 따라 휴전 당시의 전선이 유지되게 되었으므로 전쟁 후로도 아제르바이잔 측이 통제하게 되었다.

 

붉은 빗금 쳐진 지역은 2020년 12월까지 아르메니아가 철수할 지역.

아제르바이잔 어 사용지역
오일 필드(아제르바이잔 바쿠)
아제르바이잔 소수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