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부터 청나라까지..
알란족은 기원전 3세기 경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출현한 인도-유럽어계의 민족이었다. 이들은 아랄해 북쪽에 살고 있었으며 주변지역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려 그들이 알란에 대해 기록하게 했다.
이런 기록 중에는 놀랍게도 사마천이 지은 사기도 포함되어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알란을 엄채(奄蔡)라고 불렀는데 알란의 음차로 보인다. 사기에 따르면 엄채는 강거에서 북서쪽으로 2천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 풍속은 강거와 유사하고 10만의 궁수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훨씬 후대에 지어진 후한서는 그들이 강거에 예속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들도 알란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스트라보 역시 페르시아의 기록에 의거하여 알란족에 대해 기록했다.
이 알란족은 사기에 기록되었을 때까지는 아랄해 북쪽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서기 1세기 경 카프카스 산맥 북쪽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아오르시를 흡수하고 사르마티아의 일원이 되었다. 위략에 따르면 이 시기에 알란족은 강거의 예속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들은 로마 및 로마에 복속된 보스포로스 왕국과 경계를 맞닿아있으면서 사르마티아의 주도적인 부족으로써 흑해 북쪽 스텝지대를 지배하였다. 요세푸스 등 당시의 로마 역사가들이 이 사실을 공인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평원지대는 서기 3세기 경 고트족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4세기 중반에는 훈족이 밀려들어왔다. 알란족은 훈족에게 패배하여 예속하거나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부는 독일 지역으로 도주했고, 또 다른 일부는 발트해 유역이나 볼가강 북쪽으로 도주하였으며 일부는 북카프카스지역에 남아 훈족의 예속하에 들어갔다.
볼가강 북쪽이나 발트 유역으로 도주한 알란인들은 곧 해당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일로 도망쳤던 알란족은 훈족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반달족등과 함께 406년 서로마와의 국경지대인 라인강을 넘어 갈리아를 침공한다. 이 때 알란족은 두갈래로 갈렸는데 한 갈래는 그대로 갈리아에 남았다. 갈리아에 남은 알란족은 북프랑스 일대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으며 알란의 군주였던 상기반은 서로마, 서고트와 동맹을 맺고 아틸라를 상대로 카탈라우눔에서 회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갈리아의 알란족은 프랑크와 서고트의 세력 확장의 틈바구니에 끼어 5세기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북프랑스 일부 도시들의 지명에서 알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반면 또 다른 갈래는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했다. 409년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한 알란족은 이베리아 반도 중부 및 남부지역을 장악하고 나름대로의 세력을 과시하는데 성공했다.
훈족의 경우 453년 아틸라 왕의 사후 내분에 휩싸여 흑해 북안의 땅으로 퇴각하였지만 서유럽 땅으로 들어온 알란족은 갈리아를 거쳐 에스파냐 땅에도 정착하였다.
갈리아를 거쳐 에스파냐 땅으로 침략한 이들 세 족속들은 제비뽑기로 스페인 땅을 나눠가졌다고 한다. 휘다티우스의 연대기에는 알란족은 루시타니와와 카르타기넨시스 지방을 차지하였다고 나온다.
루시타니아 속주는 오늘날의 포르투갈, 카르타기넨시스 속주는 카르타헤나를 수도로 한 스페인 동부 지역이다. 심지어 일부 알란족은 반달족과 함께 북아프리카로 넘어가 그곳을 점령하였다. 프랑스인들 이름 가운데 ‘알랭’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알라노스’에서 온 것인데 알란족이라는 뜻이다.
훈족을 연구한 영국의 고(故) 톰슨 교수는 442년 로마의 실권자 아에티우스 장군이 당시 갈리아와 에스파냐 땅을 휩쓸던 ‘바가우데 반도叛徒’를 견제하기 위해 알란족을 오를레앙 근처에 정착시켰다고 지적한다. 아시아에서 기원한 유목민 알란족이 유럽인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몫을 한 것이다.
북카프카스에 남아있던 알란족은 아틸라 사후 훈족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다. 마그하스를 수도로 한 이들은 나름대로 평화롭게 지냈지만 7세기경 아랍의 세력이 북상하면서 위기에 빠진다. 알란족은 마침 주변에서 세력을 성장시키고 있던 하자르에 예속되면서 하자르와 함께 아랍 군대와 싸웠다. 우마위야 왕조의 군대와 알란족은 여러차례 충돌했으며 하자르의 지원덕에 알란과 우마위야의 다툼은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몽골의 침공 당시 알란족 중 일부는 중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과는 별 연고가 없는 이들은 곧 칸들의 신뢰를 사게 되어 쿠빌라이 칸 재위 시절에 이르러서는 쿠만족 등과 함께 친위군단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지만 권력 욕에 눈이 먼 이들은 원나라가 내분을 일으킬 때 칸을 옹립시키고 폐위하는데 개입함으로써 강력한 권력을 얻고 원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주원장이 세운 명의 공격으로 원나라가 사라지고 잔당들이 몽골로 도주할 때 이 알란족들도 몽골 초원으로 따라갔다. 이들은 몽골족의 일원으로써 호르친부에 편입되었다가 청나라가 몽골을 정복하면서 청의 지배를 받는다. 이들은 팔기군 중 상백기, 상홍기, 상람군에 예속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