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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Parthia)와 박트리아(Bactria)

frog.ko 2021. 1. 11. 18:55

알렉산더 왕이 서기전 323년에 죽은 후, 알렉산더의 군대가 침입했던 지역들은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었다.

알렉산더가 죽은뒤 그의 유족들은 힘이없었고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급사했기 때문에 알렉산더의 부하들은 서로를 대왕의 후계자라고 자칭하고 싸웠다.

 

그들을 가르켜서 디아도코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안티고노스1세, 셀레우코스1세, 프롤레마이오스1세, 리시마코스 등이다. 이들의 전쟁은 알렉산더 사후 40여간이나 지속된다.

 

안티고노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1세가 마케도니아에서의 세력을 회복하였고, 메소포타미아의 셀레우코스는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를 패사시키고 트라키아까지 세력을 넓힌다.

 

그리하여 분열되었던 세력은 다시 3개의 세력으로 최종적으로 줄어들었다.

 

마케도니아는 안티고노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소아시아~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3왕조가 지배하게 된다.

 

그 중에서 현재의 이라크와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은 옛 페르시아에 속해 있었는데, 셀레우코스 왕조(Seleucus dynasty, 서기전 305~60년)가 들어섰으며, 그 당시 헬레니즘 국가 중에서 영토가 가장 넓었다.

 

셀레우코스(Seleucus)가 서기전 305년에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굽차 왕에게 동쪽의 많은 땅을 빼았긴 이후에도 셀레우코스 왕조(Seleucus dynasty)의 왕들은 알렉산더 왕의 다른 후계자들이 각각 세운 제국들과 많은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서기전 247~245년 기간 중에 셀레우코스 왕조(Seleucus dynasty)가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Ptolemaic Egypt)와 전쟁의 혼돈 속에 빠졌다.

 

이 때 셀레우시드 제국(Seleucid Empire)의 통치구역에 해당하는 현재의 이란 북동지역 파르티아(Parthia)의 총독 안드라고라스(Andragoras)가 셀레우코스 왕조(Seleucus dynasty)에 반기를 들고 독립하였는데, 이를 파르티아 제국(Parthian Empire, B.C 247년~A.D 224년)이라고 부른다.

 

BC238년에는 파르니(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남부지역, 카스피해 남동 연안지역) 지역의 족장 아르사케스(Arsaces I)가 파르티안 제국(Parthian Empire)의 안드라고라스(Andragoras)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따라서 파르티안 제국(Parthian Empire)을 아르사키드 제국(Arsacid Empire)라고도 부른다.

 

아르사케스(Arsaces I)는 스키타이인[Scythians, 또는 사카(Saka)족, 사이(塞)] 또는 박트리아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셀레우코스 왕조(Seleucus dynasty)에 속한 박트리아 지역의 총독 디오도토스 1세(Diodotus I Soter)는 서기전 245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북쪽 지역에 있는 소그디아나(Sogdiana, 현재의 우즈베키스탄)를 정복하였으며, 디오도토스 왕조(Diodotus dynasty)를 창건하였는데, 그 위치는 파르티안 제국(Parthian Empire)의 동쪽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