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몬테네그로( Montenegro)

frog.ko 2021. 1. 12. 18:34

몬테네그로는 발칸유럽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유럽 내에서도 매우 작은 국가이다. 과거 몬테네그로 공화국은 세르비아 공화국과 함께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었고 이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합을 구성하였으나, 2006521일 치러진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결정되었고, 이후 동년 6월 대내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게 되면서 현재 독립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몬테네그로 정부의 공식 자료에 따르자면 몬테네그로 인구는 631231(2020년 현재)이며, 인구 비율로 보자면 몬테네그로인이 61.9%(380,466), 세르비아인이 9.3% (57,454), 무슬림이 14.6%(89,615), 알바니아인이 6.6%(40,415), 기타 인구가 7.6%를 차지한다. 이외에도 약 20만명이 세르비아를 비롯한 인근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13,812km²로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를 합한 것보다 조금 크다. 주민의 다수(72.1%)는 동방정교회를 믿는다. 그 다음으로 무슬림(19.1%)이 많으며, 가톨릭이 3.4%로 세 번째로 많다.

 

국호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이탈리아어로 '검은 산'이란 뜻으로 로브첸 산을 가리킨다. 수도는 포드고리차이지만 헌법상 수도는 체티녜로 '옛 왕도'라는 뜻의 프리예스토니차로 정해져 있다.

 

몬테네그로 내륙은 서, 북, 동쪽으로 각각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코소보 그리고 남쪽으로는 알바니아와 접해있다. 그리고 해안으로는 293.5㎞의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선을 차지하고 있는 해안 국가이다. 그중 코토르만(Boka Kotorska)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국가의 대부분은 넓은 고지대의 산악 지괴(地塊)로 형성되어 있고 수많은 깊은 골짜기와 계곡들이 교차한다. 해안선 근처의 남부 지방에서는 저지대를 볼 수 있다.

 

몬테네그로의 해안은 지방 주요 도시인 헤르체그노비에서부터 모래사장과 풍부한 아열대 식물들로 유명한 보야나강에 이르는 좁은 도로로 연결 되어있다.

 

몬테네그로인들은 세르비아인의 한 일파로 분류되어 지는데 6세기 이후 남슬라브족들의 이주와 더불어 현재의 아드리아 연안을 중심으로 부족 국가를 형성하였다.

 

로마인들로부터 기독교(콘스탄티노플 교회: 후에 정교로 발전)를 받아들인 몬테네그로인들은 9세기 두클랴(Duklja) 공국을 수립한 이후 계속된 성장을 이루다가, 1077년 마침내 로마교황 그레고리 7로부터 독립 왕국을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1094년 세르비아 중세 왕국의 시조인 스테판 네마냐가 이끄는 라쉬카공국 지배하에 들어감에 따라 제1대 몬테네그로 중세 왕국은 그 끝을 맺게 된다.

 

세르비아 최대 전성기를 이룬 두샨왕이 사망한 이후,1356년 제2대 몬테네그로 중세 왕국의 발쉬치(Balšić) 왕조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오스만 터키의 발칸 원정과 베니스 공국과의 전투에서의 패배로 국력이 약해진 몬테네그로는 제3대 왕조가 출현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쯔르노예비치 왕조쯔르노예비치왕조이다.

 

이때 이후로 몬테네그로는 현재의 국명인 쯔르나 고라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이후 오토만 터키의 계속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몬테그로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활용해 근대까지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근대 시절 몬테네그로는 오토만 터키의 강력한 견제와 나폴레옹 하 프랑스의 간섭 속에서도 니에고쉬(18301851) 시기에 들어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어 1878년 러·터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의 지원속에 독립국가로 인정받은 몬테네그로는 수도 쩨티녜를 중심으로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군의 무력에 의해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수립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하로 편입되면서 독립권을 상실하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내 구성 공화국 중 하나로 편입되었다.

몬테네그로, 코토르 만.
부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