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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근위대, 케식텐

frog.ko 2021. 1. 14. 00:51

케식은 몽골 제국의 왕족들, 특히 칭기즈 칸이나 왕비 보르테와 같은 지배자를 위해 창설되었던 친위대이다. 한문으로는 겁설(怯薛)이라 칭한다.

 

'케식'은 몽골어로 '축복받은, 신성한'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주요 임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국의 칸이나 황제의 곁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밤낮에 따라 2개의 부대로 나뉘었는데, 밤에 근무하는 부대는 케브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은 정규군으로부터 분리되어 그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는 대신, 후방에서 호위의 업무를 맡도록 되어 있었다. 케식 부대의 대장은 '체르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몽골의 역사에서, 부족 지도자의 경쟁자 암살과 적대 부족간의 부족장 암살은 몽골 부족 정치 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충성심과 이해 상충으로 인해 흔히 발생했다. 또한 상대 부족의 결속력 약화 및 상대 부족에 대한 주변 부족들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건으로, 대표적인 예가 징기스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자신도 모르게 타타르족에 의해 독살당한 사건이 있다.

 

몽골 유목민들이 전통적으로 잠을 자는 데 사용하던 이동식 게르에는 성벽이나 돌집과 같은 방어 요새나 장치 없이 생활해야 하는 유목민의 특성상 단단한 벽이 없었기 때문에 칼이나 창은 벽을 쉽게 뚫고 안에 있는 대상을 죽일 수 있었고 이러한 특성 상 밤중에 위험이 도사릴 수 밖에 없었다. 밤중에 영지 내에 접근하기가 쉬웠고 가죽으로 된 천막은 창칼에 뚫리기 쉬워 암살 시 천막을 뚫고 목표물을 공격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에 그 위험성 또한 매우 높았다.

 

따라서, 몽골 내 몽골의 군주들과 투르크족 군주들은 개인 호위병을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케레이트의 칸이었던 옹과 케레이트의 부족장이었던 토그릴칸은 '토르구드'라는 주간 근위대를 두었는데, 구전에 따르면 오늘날의 토르구드 부족이 이들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토그릴 칸과 옹 칸이 1203년 몽골족에 의해 패배한 이후, 칭기즈 칸은 자신에게 극도의 충성을 바치는 자들을 모아 케식 친위대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초기에 이들은 낮에 근무하는 70명의 '토르구드'(Torguud 혹은 tunghaut)와 밤에 근무하는 80명의 '케브툴'(khevtuul)로 나뉘었다. 칭기즈 칸의 통치기간 동안, 이들은 '사준', '4명의 장군'이라고 불리는 무칼리, 치라운, 보오르추, 보로클의 네 장수가 각각 지휘하는 부대로 나뉘었다. 케식의 구성원들은 몽골 제국 내 대부분의 병사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고, 다른 거의 모든 장교를 능가했다. 이들에 대한 보수는 매우 훌륭했고, 때문에 부대원들의 업무에 대한 천직 의식은 강렬했다. 이후 케식 부대의 수는 빠르게 증가해, 나중에는 한 명에 평균 3일 정도만 근무하면 될 정도로 늘어났다. 이러한 이유로, '케식'이란 단어는 '축복받은, 신성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케식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으로 여겨졌고, 구성원들은 인질 교환 시에는 적국의 귀족을 인질로 하는 것에 대응한 인사로서 교환되었다. 초창기 이들의 수는 1,000명 정도였으나, 칭기즈 칸의 통치 중반에 바얀의 숙부인 나야가(Nayagha)에 의해 통솔되는 투먼으로 확장되었다. 이들의 수는 당시 10,000명으로 늘어났다.

 

케식 부대는 원래 몽골족, 만주족, 한족 및 카자흐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몽골 제국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칭기즈 칸 사후 후계자들의 케식 부대는 페르시아,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등지와 알란인, 한국인,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부대를 모집했다. 케식은 다양한 인종이 섞인 부대가 되었다.

 

케식은 황제의 개인 재산으로 취급되었던 만큼, 케식 부대는 황제의 후계자에게 상속되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에, 사망한 황제의 케식 부대는 황제의 가족과 가정을 돌보고 수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구유크 칸의 경우 그 아버지인 오고타이 소속의 케식 부대를 대부분 자신의 친위대로 데려가기도 했다.

 

이후 쿠빌라이 칸(1260-1294)은 케식 부대의 기능을 제한하고, 새로운 친위대를 창설하였다. 그러나, 그의 케식 부대는 여전히 '사구'의 후손들에 의해 통솔되었다. 이 때 쿠빌라이에게 소속된 케식 부대원들은 총 12,000명이었다.

●주력 부대

★토르구드 (Torguud, Tunghaut)는 몽골의 황제 칸의 주간 근위대를 뜻한다. 이들은 정복이나 일상 생활에서 항상 통치자와 가까웠다. 유명한 수부타이는 그 치하 초기에 케식에 있었다.

★케브툴(Khevtuul) 은 케식의 야간 근위대이며 황제와 통치자들이 유르트에서 잠을 자는 동안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케브툴"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몽골어로 침대나 바닥과 같은 것에 "누워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밤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보조 부대

코르친(Khorchin) 은 카간스(Khagans) 의 전투 근위대였다. Khorchin이라는 단어는 화살통을 운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학자들은 몽골 일족 코르친이 이들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아수드 가드(Asud guard) 이들은 북부 코카서스에서 온 알란인들로 완전히 구성되어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1236년 몽골의 볼가 불가리아 침공 이후 전쟁에서 몽골 군주를 조력자로 섬겼다. 쿠빌라이 카간은 이들을 제국 경비대로 조직했다. 그들의 후손은 현대 몽골 부족인 아수드를 형성했다.

충실한 러시아인 라이프 가드(Ever-faithful Russian Life guard) 쿠빌라이의 후계자 중 한 명인 원 문종은 1330년 대도 근처에 러시아인 부대를 결성했다.

킵차크 및 캉글리(Qanqli) 근위대. 1216년 이후에 킵차크와 캉글리 수감자들은 중국 북부의 몽골인들에게 전사와 하르친 (암말의 우유를 발효하고, 정제함)으로 봉사했다. 쿠빌라이 칸 아래에서 킵차크족은 특수 경비대를 구성했고, 캉글리 경비대는 1308년에 조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