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드인은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스칸디나비아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고대 노르드어를 사용했던 북게르만족 일파를 가리킨다. 영문으로는 노스맨(Norseman) 이라고 부른다. 이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의 북게르만어군의 갈래로, 현대 여러 스칸디나비아 어들의 초기 형태였다.
스웨덴어로 "노르드인"(Nordman)이라는 이름은 ‘북방에서 온 사람들’(people from the North)에서 유래되었으며, 중세 영문으로는 노스맨(Northman)으로 불렸으나 근대에 Norseman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들은 바이킹으로서 덴마크와 스웨덴 남부, 노르웨이 남부에 살고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와 에스토니아에까지 서쪽으로는 캐나다와 그린란드 까지 진출하여 ‘노르딕 국가’(Norse Countries)들을 건국하였다. 바이킹인 이들은 영국의 엥글로색슨 왕국에 들어와 영국에서 덴인 또는 노스맨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이들은 프랑스에서 노르만인(Norman)이라고 불렸다.
노르드인은 북게르만어에 속하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를 사용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는 나중에 덴마크어와 아이슬란드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로 분기되었다.
그들은 중세 유럽과 근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역할을 하였다. 그 예로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라는 지명의 유래, 노르만의 잉글랜드 침공,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에 세워진 노르만 공국, 십자군 당시 팔레스타인에 세워진 노르만족의 공국 등 역사적으로 많은 역할을 하였다.
911년 서프랑크 왕 단순왕 샤를 3세는 이들의 지도자인 롤로와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을 맺고 노르만족에게 이 지역의 봉토를 주고 노르망디 공작의 작위를 수여하였다. 이후에 이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스칸디나비아 전통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으며 용맹하고 무자비함으로 악명높았다. 그들은 소수의 병력으로도 많은 수의 적군과 싸워 이겼고 자주 배신을 일삼았다.
노르망디에서 노르만족은 프랑스의 봉건제를 받아들여 프랑스 왕의 신하가 되었고 노르만의 기사, 전사계급은 전통적인 프랑스 귀족계급과 구별되었다. 이들은 주로 용병으로 고용되었고 가난했다.
노르만족은 노르드족 시절인 일찍부터 잉글랜드와 접촉하였다. 11세기에 이르러 이들은 결혼과 용병으로 더욱더 잉글랜드와 결합하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략으로, 노르만 정복으로 역사에서 다루는 침공이다. 노르만의 윌리엄은 이 대규모의 잉글랜드 침략을 성공시킴으로써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고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조를 세웠다. 초기에 노르만 정복자들은 앵글로-색슨족과 대립했으나 결국 두 계급은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융화되었고 나중에 백년전쟁을 거치면서는 완전히 잉글랜드의 귀족으로 동화되었다.
11세기 초에 이르러 노르만족의 모험가들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로 점점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지역의 귀족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어 사라센과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들과 주로 싸웠다. 남부 이탈리아에서 노르만족이 점점 강성해지자 그들은 이전의 고용주들에게서 영지를 빼앗고 자신들의 가문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부 이탈리아의 노르만족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오트빌의 탕크레드의 아들들이다. 탕크레드는 노르망디 공작의 보잘것 없는 하급기사였지만 그의 아들 12명 중 8명이 남부 이탈리아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왔고 남부 이탈리아를 평정했다. 특히 로베르토 기스카르를 비롯한 몇몇은 1050년대에 이탈리아 남부의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인 칼라브리아와 아풀리아를 침공하여 점령했으며 나중에는 시칠리아 전체를 지배했다.
1130년 루지에로 2세는 이탈리아 남부의 노르만족의 영토를 모두 병합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이루었고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 통치자들은 12세기말 호엔슈타우펜 왕가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시칠리아 왕국을 지배했다.
노르만족은 당시 중세의 강력한 용병으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비잔티움 제국의 대 셀주크 투르크 전쟁에도 참전하였고 십자군 원정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로베르토 기스카르는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였고 그의 아들 안티오키아의 보에몽 1세는 제1차 십자군 당시 사실상의 지도자였고 안티오크 공국의 건설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팔레스타인에 노르만족의 영토를 세웠다가 나중에 비잔티움 제국과 경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