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은 스웨덴 출신의 기업가이자 발명가인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5가지 부문 중의 하나인 노벨상이다. 1901년부터 매년 국가간의 우호, 군비의 감축, 평화교섭 등에 큰 공헌이 있는 인물이나 단체에게 주어진다.
수상자들은 영예의 메달과 함께 우리 돈 10억원 이상의 적지 않은 상금도 받는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과학자인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1895년 제정되었다.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고, 이를 이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1867년에 특허를 얻었다. 1869년부터 파리 연구소에서 연구에 전념하여, 1875년 무연 화약 발리스타이트를 발명하였다. 이러한 발명 및 특허에 의해 그의 가문은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1896년 12월 10일 숨을 거두기 전 유명한 유언장을 남겼다. 자기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부문에 걸쳐 공헌이 있는 사람에 상을 주라는 유언이다.
세계의 평화와 과학의 발달을 염원해 오던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은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 기부되었다. 그 기부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를 설정하였다. 이 상은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경제학·평화의 6개 부문으로 나누어 국적 및 성별에 관계없이 그 부문에서 뚜렷한 공로자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평화상을 제외한 5개 부문은 이 상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고국인 스웨덴에서 시상된다. 단지 평화상만은 노르웨이의 퇴역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노벨위원회' 가 선정권을 갖고 있고 시상식도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다.
노벨상 가운데 평화상만 수상자 선정 주체가 다른 것은 노벨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노벨은 죽기 전 유언장을 통해 노벨상의 시상 부문과 수여기관을 지목했는데,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의회에서 심사하고 시상하도록 했다. 그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벨재단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첫째는 노벨이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연합국가가 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노벨이 유언장을 작성한 1895년 당시 노르웨이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웨덴과 합병된 상태였다(노르웨이는 1905년 독립). 양국민의 화합을 원했던 노벨이 통합국가의 일부분인 노르웨이에 평화상 선정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둘째, 당시 노르웨이는 각종 국제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중재와 협상을 통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명성이 높았다. 노벨이 이같은 노력을 높이 평가했을 수 있다는 점도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또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달리 군사력으로 외국을 침략한 역사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셋째, 노벨 자신이 당시 평화운동가였던 노르웨이 작가 뵈른스트예르네 뵈른손을 워낙 좋아해 그렇게 결정했다는 설도 있다.
노벨재단에 따르면, 당시 노벨이 내놓은 유산은 3,100만 크로나. 이를 현재 환율로 단순 환산하면 약 40억원이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가치는 2,373억원(18억2,700만 크로나)에 이른다.
재단이 발행한 '2019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노벨재단은 작년말 기준 49억200만 크로나(6,368억원)의 자산을 관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