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는 1501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후 스페인·콜롬비아의 통치를 거쳐 1903년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했다. 국토 면적은 7만 5,420㎢이며 인구는 365만 7024명(2015년 현재)이다. 수도는 파나마 시티이다.
종족구성은 메스티조 70%, 백인 10%, 인디언 10% 등이다.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파나마 운하로 유명한 나라다.
파나마의 통화는 발보아이며, 1903년 독립한 이래 미국 달러화에 고정 연동되어 있다. 사실상 이 나라는 '달러화(dollarize)되었다'라고 한다. 파나마는 자국 화폐를 주조하나, 지폐는 미국 달러로 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선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상선의 경우, 꼭 소유주의 국가에 등록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 배를 원래 어디서, 누가 사용하건 상관없이, 세금 등이 싼 나라에 등록해 두기 때문에, 서류상의 선적(편의치적, Flag of convenience)을 이 나라로 등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항만에서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보게 되면 선박 뒤에 PANAMA라고 적힌 경우가 꽤 자주 보인다. 약 8천여 척의 상선이 등록되어 있다.
1989년 12월에 미국은 마누엘 노리에가라는 파나마 장군을 마약 밀수 혐의로 군사 작전을 벌여 체포하는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리적으로 북아메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을 나누는 파나마 지협, 운하가 파나마 국토의 중간쯤에 위치하므로 지리적 기준으로 나눈다면 러시아나 터키처럼 두 대륙에 걸친 나라라고 볼 수도 있다.
파나마는 과거 콜롬비아의 1개 주였으므로 역사적으로는 남미 쪽에 좀 더 가깝겠지만 현대에는 대체로 북중미와 남미를 나눈다면 중미 국가로 분류하는 편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1인당 GDP가 높은 나라에 속하는 데다 중남미에서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칠레, 우루과이, 에콰도르, 쿠바, 페루,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치안이 비교적 좋은 나라로 알려져있지만 빈부격차가 심한것은 마찬가지이다.
파나마는 19세기 콜롬비아가 시몬 볼리바르의 독립 운동으로 독립을 쟁취하면서 그란 콜롬비아 가맹국인 콜롬비아의 주(州)로 함께 독립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육지 본토와 붙어있으면서도 깊은 정글에 격리된 지역적 특성과 콜롬비아 본국 정부에게 식민지 같이 착취당하던 터에 종종 분리 독립 운동을 일으켰으나 대부분 콜롬비아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당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중남미로의 영향력 확장을 시작하면서 중요한 거점으로서 파나마를 주목하였다.
이때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에 파나마 운하 착공을 위한 자금을 제시하고 사업에 착수하려 했지만 콜롬비아 상원이 대가를 더 요구하며 거부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방침을 바꿔 파나마 지역의 토착 영주들이 콜롬비아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후원했고 나중에는 아예 미군을 파견하여 파나마 독립군과 함께 파나마를 1903년에 콜롬비아로부터 분리독립시켜 독립국가로 만들어버렸다.
이윽고 미국은 파나마 정부로부터 운하 착공에 대한 전권, 완성된 운하의 운영과 관리권, 그 보호를 위한 군대 주둔에 관한 협정까지 일사천리로 맺고 착공에 들어가 1914년에 파나마 운하를 개통시켰다.
이 파나마 운하의 권리는 사실상 영구 임대나 다름없어 미국은 파나마를 속국처럼 마음대로 다뤄왔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중남미에서도 민족주의의 열기가 고조되자 파나마에서도 운하에 대한 이권을 회수하려는 운동이 거세게 전개되었다. 운하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운하에 대한 문제는 파나마 전체의 사활을 건 이슈였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예전처럼 무력 진압 따위를 할 수 없었던 미국은 어쩔 수 없이 1977년에 오마르 토리호스와 협상하여 파나마 정부에 운하에 대한 모든 권한을 반환하기로 약속했고, 결국 1999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운하의 소유권이 파나마 측으로 완전히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