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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이야기

frog.ko 2021. 1. 24. 20:03

그린란드는 대표적인 아대륙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 북쪽에 포함되어 있는 덴마크 왕국의 구성국이자 자치령이다.

 

2009621일에 자치를 선언해, 보다 고도화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여전히 덴마크의 속령이므로 국방이나 외교적인 사안 등에 대해서는 덴마크에게 있지만, 그린란드의 지하자원을 사용하는 권리와 사법권, 경찰권, 입법권 등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수도는 누크이다.

 

면적은 약 2176km²[5]으로 남한 면적 21.5배가 넘으며 한반도 전체 9.9, 제주도의 1182배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215만 ㎢)보다 좀 크고 아르헨티나 보다 작다. 초원은 인간이 거주하는 해안가 끄트머리에 있고 국토의 1% 정도이며 최남단 지역에 숲이 딱 한 곳 있다.

 

이런 광활한 육지와 대조적으로 인구는 굉장히 적어서 인구 밀도가 km²0.026명에 불과한데, 춥고 척박한 환경 탓이다. 이는 서울특별시만한 땅에 16명이 사는 것과 비슷하다인구 수도 56,000여 명밖에 안 된다.

 

그린란드에 사람이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 무렵으로, 이누이트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후 서기 986년에는 노르만족인 에이리크 라우디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섬의 이름을 '초록의 땅'이라는 뜻의 '그린란드'라 이름 지었다.

 

이 때부터 그린란드에 노르만 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인 이누이트 족과 충돌이 잦았고,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린란드의 빙설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이누이트 족과 달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고, 척박한 환경으로 목재, 철 등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할 자원의 부족으로 인구 증가에 큰 어려움을 겪어, 수적, 군사적으로 이누이트 족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1408년 바이킹족들이 그린란드에 건설한 교회 터 /위키피디아 

대표적인 예로 1379년 이누이트 족의 습격을 받아 노르만 족 남성 18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노르만 족의 인구는 4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본토와의 교류를 통해 15세기까지 노르만 족은 그린란드에 거주하였으나, 소빙기로 해안에 유빙이 생겨나면서 본토와의 교류에 문제가 생긴데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결국 그린란드의 노르만족 거주지는 소멸되었다. 이후 1721년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루터교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한스 에게데 일행이 그린란드를 탐험했고 덴마크 군대가 그린란드 남서부 연안에 고트호프 요새를 건설하면서 덴마크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랜드를 사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으며 1867년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William H. Seward)가 알래스카를 매입한뒤, 그린란드와 아이스란드까지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1946년에 정식으로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1억 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후 미국은 그린란드에 공군기지 건설을 제안해 툴레공군기지(Thule Air Base)를 건설하고 운영하고 있다.

 

위키리크스(WikiLeaks)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21세기 들어와서도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누크의 전경

 

Tasersuatsi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