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마는 플로리다 반도 남동쪽에서 히스파니올라섬에 이르기까지 약 800km에 걸쳐서 산재하는 약 700개의 섬과 2,000여 개의 산호초로 된 바하마 제도로 구성되며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약 30개이다.
수도는 나소(Nassau), 인구는 약 36만명으로 강원도 원주시와 비슷하고 국토면적은 13,880㎢으로 대략 강원도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다.
미국과 직접 국경선을 대고 있는 나라인 멕시코와 캐나다를 제외하면 미국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라로, 그림같은 해변과 풍광 덕분에 미국인의 고급 여름휴양지로 인식된다. 또한 조세 피난처(Tax Haven)로도 유명하다.
주민의 85%는 아프리카 혈통을 가지고 있다. 많은 수의 조상들이 1800년대 초 노예무역의 집결지인 바하마의 섬들에 정착하였고, 미국독립혁명중에 도망해 온 영국인들도 몇 천 명 있다.
바하마의 원주민은 9세기에 정착한 루카얀(Lucayan)족(族)으로 아라왁(Arawak)족에 속한 종족이다.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섬은 1492년에 콜럼버스가 최초로 신대륙에 상륙한 지점으로 유명하다. 얼마 후 에스파냐 식민주의자들이 첫 정착지를 만들었고 노예무역의 기점으로 삼았다.
17세기 초에서 18세기 말, 서인도제도에 해적들이 들끓던 시대엔 해적 소굴이 되어 수도 나소는 한때 해적 공화국 뉴 프로비던스(1706~1718년)가 세워질 만큼 한때 해적들의 본거지가 세워질 정도였다. 프랑스 - 스페인 함대의 토벌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던 해적들은 영국의 조지 1세가 우즈 로저스를 바하마 총독에 임명함으로 종식된다. 이후 영국은 벤자민 호르니골드를 비롯한 친영파 해적들로 하여금 해적들을 토벌하게 하여 바하마 일대의 해적들은 사라졌다.
이렇게 지배권을 확립한 영국은 식민지화를 시도해 1783년 정식으로 영국 식민지로 삼았다. 바하마 일대의 섬들은 19세기부터 미국인들의 관광지가 되었고, 이후 미국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1920년대에 미국에서 금주령이 실행되었을 때 바하마의 나소는 밀수로 번영했으나, 1930년대 금주령이 폐지되자 몰락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자꾸 친나치, 친독일 발언을 일삼은 에드워드 상왕(上王)을 불편하게 여긴 영국 정부가 에드워드 상왕을 바하마 총독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바하마는 부동산업(不動産業)이 활발하여, 미국인들이 이곳에 많은 별장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는 섬 한 개를 개인소유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채염(採鹽), 천해(淺海)어업 및 목탄(木炭)제조, 마호가니 벌목(伐木) 등 임·수산업 외에 근래에는 토마토 등의 채소, 바나나, 파인애플, 사이잘삼 등의 상품작물의 재배도 영위하고 있다.
마야과나섬에는 미국 해군기지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미국과의 관계가 깊어, 나소와 마이애미 사이에는 정기 항로·항공로가 열려 있다. 바하마의 경제는 대부분 외화를 벌어들이는 관광업과 금융서비스업에 의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