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중동까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몽골제국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기동력과 당시로선 강력한 무기였던 몽골 활, 그리고 전투 식량 조달 능력에서 그 비결을 찾는다.
페르시아를 정복할 당시 몽골군은 많아야 24만 명이었다. 러시아와 중동.유럽 정벌에 나설 때는 고작 15만 명이었다. 당시 몽골 부족 전체 인구는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불과 20만 명 전후의 칭기즈칸 군대는 수많은 전투에서 모두 200만 명이 넘는 상대를 무찔렀다.
당시 몽골군의 편제는 아주 간단했다. 십진법으로 이뤄진 편제 중 가장 작은 단위는 10인대다. 10인대가 열 개 모여 100인대를 이루며, 가장 큰 부대는 열 개의 1000인대가 모여 1만 명으로 이뤄진 '투만(touman)'이었다. 세 개의 투만이 하나의 군단을 형성했다. 전체 군대의 40%만 중무장했다. 나머지 60%는 갑옷을 입지 않은 채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투구만을 착용했다. 몸이 가벼운 이들은 적진 교란, 원거리 공격, 추격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몽골군의 활(각궁)은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고 탄력이 뛰어났다. 최대 사거리가 315m에 달했는데 당시로선 첨단 무기였다. 보급품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칭기스칸의 기나긴 전쟁역사에서 발달한 것은 전투식량이다.
현대인들이 술안주와 간식으로 애용하고 있는 육포가 대표적이다. 몽골군의 전투식량은 육포의 일종인 보르츠. 가축 한 마리 분의 고기를 말린 이 비상식량을 빻아 가축의 방광을 말린 통에 넣으면 병사 한 명의 1년 식량으로 너끈했다. 육포는 겨울에 뼈와 내장을 발라낸 소를 건조한 곳에 뉘어 축구공만한 크기로 줄어들 때까지 건조시키고 잘게 빻아 두면 된다. 몽골 군사들은 이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영양만점의 비상식량으로 긴 전쟁 기간 동안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햄버거의 원조가 되는 소고기 패티(patty)가 있다. 패티는 모스크바를 점령한 몽골군의 전투식량이었다. 결국 햄버거의 원조는 몽골군이 셈이다. 몽골군은 장거리를 이동할때 양을 잡아 고기를 잘게 썰거나 덩어리를 말안장에 넣어다녔다. 갈아다진 고기는 먹기도 좋고 말이 뛸때마다 그 충격으로 고기가 다져져 부드러워지고 말의 체온으로 숙성까지 가능했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는 망아지 한 마리의 살코기가 있으면 몽골전사 100명이 하루 세끼 식량으로 삼을 수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모스크바를 점령한 몽골군이 퍼트린 패티문화는 타타르 스테이크라는 서양식 육회로 변하게 되고 14~5세기에 독일로 건너가 불에 구워먹는 함부르크 스테이크의 원조로, 미국으로 건너가 햄버거의 패티가 된 것이다.
몽골군은 전쟁중 전투식량으로 동물의 피도 이용했다. 13세기 몽골군은 원정전투를 떠날때 10마리 이상의 말을 끌고 다녔다. 이동중에 몽골기병은 말의 정맥에 상처를 빨아 마셨다. 한마리당 0.5리터의 피를 열흘간격으로 돌아가며 마시면 병사는 물론 말의 생명에도 지장이 없었다.
유목민족의 특성을 활용해 이동하면서 철모에 양.말고기를 익혀 먹었던 것이 샤브샤브와 몽골리안 바비큐의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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