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세계 최고의 국력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왕을 황제로 올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황제를 자처한 제국 -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과 뒤이은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이나 심지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까지도 - 은 반드시 로마 제국의 정통 후계임을 자처했다.
잉글랜드 왕과 프랑스 왕이 신성 로마 황제 선거에 도전할지언정 자국의 황제를 자처하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이런 전통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이르러서 깨진다. 나폴레옹은 의회를 통해 국민이 황제로 임명해주는 형식으로 제위에 올랐고, 그나마도 샤를마뉴 -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후계자임을 자처해 간접적으로라도 로마와 연줄이 닿아 있다.
유럽 내 국가들이 제국을 칭하기 위해선 상술했듯이 로마 제국과의 연줄이 있어야 했지만 로마와의 연줄 없이도 황제를 칭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타 문화권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중동이나 인도, 중국 등 유럽 바깥의 타 문화권에서 황제를 칭할 경우 이 제국들은 로마와의 연줄이 없음에도 유럽 국가들은 이들을 제국으로 인정해 주었다. 때문에 유럽 바깥의 타문화권인 인도를 제국으로 만들어 영국 국왕이 인도 황제를 겸해도 유럽 국가들은 이에 딴지를 걸지 못한다.
'인도 황제'라는 자리는 아예 타 문화권의 황제니까. 제국급의 식민지에 제국 타이틀을 달아준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인도 각지의 제후들의 자치를 계속 인정했기 때문에 영국 국왕이 그들 위에 군림한다는 모양새를 갖출 필요도 있어서 인도 황제 칭호를 덧붙인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빅토리아 여왕(Queen)의 장녀인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 공주(동명이인)가 프로이센 왕국의 왕세자 프리드리히에게 시집갔는데,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을 만들게 되자 빅토리아 공주가 향후 황후(Empress)가 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빅토리아 공주가 독일 황후(Empress)가 되면 모친인 빅토리아 영국 여왕(Queen)의 칭호를 역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므로 자존심 상해 하던 영국인들이 일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벤저민 디즈레일리 당시 영국 총리가 인도 황제/여제라는 칭호를 쓰는 게 인도 통치에도 유리하고 영국 국민의 자존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 빅토리아 여왕에게 인도 여제 칭호를 바치게 되었다. 식민지에 제국 타이틀을 달아준 건 포르투갈이 만든 브라질 제국이 원조다. 이건 자국용이고 인정을 못 받았다.
그리고 이 때부터 섬나라 영국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국 타이틀을 획득해 황제를 주장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인도는 식민지가 되면서 완전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인도 전역이 통일된 것은 인도 제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제국의 작위를 가져다 황제위를 칭한 것과 관련해, 인도 제국은 무굴 제국의 후손이고 무굴 제국은 티무르 제국의 후손이며, 티무르 제국은 일 칸국의 후손이므로 빅토리아 여왕은 사실 빅토리아 카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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