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몽골의 동방 3왕가

frog.ko 2021. 1. 1. 15:10

동방3왕가는 몽골 제국 서방의 주치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 우구데이 울루스와 비교해 동쪽에 위치한 세 왕가(울루스)를 가리킨다. 칭기즈 칸은 동복동생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옷치긴에게 동북지역의 영토를 분봉했다.

①카사르 왕가

칭기즈 칸의 동복동생인 카사르(1164-1191)의 후손으로 제왕(齊王) 작위를 받았다. 청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의 아내이자 순치제의 생모이며 강희제의 조모인 효장문황후가 이 가문의 후예이다몽골 제국의 개국 공신이자, 칭기즈 칸의 첫째 아우이자 호엘룬의 차남으로 본명은 주치 카사르이다.

 

여러 역사 기록에서 카사르는 칭기즈 칸(테무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고 있으며 특히 활솜씨가 매우 뛰어나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그는 형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원조비사에 따르면 테무진이 벡테르를 죽일 때도 함께했다.

 

1203년 케레이트 족장 옹 칸의 황금 장막을 공격할 때 그는 가짜로 항복하는 척하면서 옹 칸의 진영에 침투해 케레이트를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을 했고 또한 1204년 나이만과의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나이만군을 상대로 엄청난 무용과 지휘를 선보이면서 나이만 본대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칭기즈 칸은 이러한 카사르의 공을 치하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이러한 업적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때마침 카사르와 사이가 안 좋던 텝 텡그리가 칭기즈 칸에게 카사르가 칭기즈 칸을 상대로 반란을 꾸민다는 모함을 하였다. 이에 칭기즈 칸은 카사르를 붙잡아와 옷을 벗겨 수레에 매단 뒤 채찍으로 때리는 형벌을 내렸으나 호엘룬이 칭기즈 칸을 꾸짖어서 카사르는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칭기즈 칸은 카사르가 받은 호의 수를 줄여 그의 세력을 약화시킨다.

 

카사르의 일족들은 이후에 그의 형제인 테무게, 카치운 알치의 일족과 함께 만주와 요동 일대를 장악하는 동방 3왕가를 이루게 된다. 그의 후손으로는 제5차 여몽전쟁 때 총사령관이었던 그의 아들 야쿠가 있었다.

 

 

②카치운 왕가

칭기즈 칸의 동복으로 둘째 동생이다. 칭기스칸의 몽골통일 직전에 사망했으며 특별한 활약상은 보이지 않는다.

 

칭기스칸의 몽골통일 이후 카치운 가문은, 형인 카사르, 동생인 테무게 옷치긴과 함께 동방(좌익)을 책임지는 3왕가 중 하나가 되었다.

 

③옷치긴(테무게)왕가

예수게이와 호엘룬 소생이며 막내인 테무게 옷치긴은 몽골이 기원한 만주의 흥안령 일대를 분봉받는다.

 

만주 일대는 목축 뿐 아니라 농경과 수렵도 가능한 풍부한 생산력을 갖춘 지역이기에, 옷치긴 왕가는 다른 왕가보다 눈에 띄게 발전한다.

 

옷치긴의 이후의 군주들은 요동으로 세력을 확대해 1316년에는 옷치긴의 후손 토크타가 요왕(遼王)의 일자왕호를 얻었으며, 만주 일대를 장악해 14세기 동아시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앙의 원나라 조정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세력을 키워 중앙정부에 대해 스스로 대칸이 되려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원나라 멸망 후에도 옷치긴 왕가의 요왕 아자스리가 주원장과 타협 끝에 만주를 지배한다.

 

명나라 아래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한 올량합 3위를 가리킨다.

 

한국과도 관계가 깊은데, 이성계의 조상인 이안사가 항복한 산지(散吉) 대왕(大王)은 옷치긴 왕가의 군주 타가차르와 가까운 제후왕이다. 이안사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옷치긴 왕가에서 천호장 겸 다루가치를 세습하며 함주, 길주 등의 고려인과 여진인을 지배한다.

 

 

※올량합 3

 

1389년 옷치긴 왕가의 군주 아자스리에게 인솔되어 항복한 집단은 명나라에 의해 타안위, 태녕위, 복여위의 3위로 편제되어 우량카이 3(올량합 삼위)라고 총칭되었다. 그러나 3위 전체를 "우량카이"라고 칭하는 것은 명나라 측의 오해로 실제로 우량카이인으로 구성되는 것은 타안위 뿐이었다.

 

우량카이 삼위는 북원을 견제하려는 명나라에 협조해 관직과 물자를 제공받는다. 우량카이 삼위는 명나라와 조공-책봉 관계를 맺으면서 명나라의 통제 밖에 있었다. 삼위는 북원 세력과 혼인 동맹을 맺으며 이중적 외교 노선을 취했고, 삼위의 수령 임명과 작위의 계승 또한 스스로 결정하고 추후 명나라에 통보하는 식이었다.

 

타안위는 삼위 중 유일하게 멸망을 모면하고 존속하면서 청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몽골 제국의 영토와 속령 그리고 종속국

▣ 만주 약사

동란국 발해부흥운동 여진  
동요 후요 동하=(동진:동여진의 준말)  
몽골 제국
원 (동방 3왕가·심왕)

동하:금나라는 몽골 제국과 싸워서 참패한 이후 1214년 금나라 황제 선종은 수도를 남경개봉부로 천도한다. 이에 분노한 몽골은 계속 금나라를 침략해서 영토를 빼앗는다. 때마침 만주에서도 야율유가를 비롯한 거란족들은 반란을 일으켜 동요(東遼)를 세웠다. 금나라의 요동선무사 포선만노와 완안호사(完顏胡沙)는 금 황제의 명령을 받고 동요와 싸웠으나 참패를 당했고 그냥 아예 독립해버려 요동의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에서 동진을 세운 뒤 만주 동부 장악.

 

후요:1216년 금나라에서 독립하여 동요를 세웠던 야율유가(耶律留哥)가 결국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에 복속되기로 했을 때, 이에 반대했던 야율유가의 동생 야율시불(耶律厮不)을 중심으로 한 거란족들이 야율유가를 축출하고 현 랴오닝 성에 위치한 등주에서 건국

12~13세기 동아시아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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