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우리에게 실론티와 보석산지로 유명한 나라로 알려져있으며 다수의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 있다.
스리랑카 내전은 1983년 7월 23일부터 2009년 5월 18일까지 스리랑카와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LTTE) 사이에 진행된 내전이다. 스리랑카 정부군이 LTTE의 지배 지역을 제압하여 26년에 걸친 내전은 종결했다.
스리랑카는 1815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편입되었던 실론이 1948년 2월 영연방의 정식 회원국으로 독립한 나라로 스리랑카 내전은 1935만 인구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계 싱할라족(74%)이 소수 힌두계 타밀족(18%)에 대한 차별 정책을 구사한데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분리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힌두계 타밀족은 수세기 동안 인도로부터 실론으로 이주·정착해왔기 때문에 인도가 스리랑카 ,문제에 개입하는 빌미를 제공 했으며 힌두 타밀/LTTE는 인도 동남부 타밀나두주(인구 5천만) 및 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해상 전투력도 보유 하고 있었다.
이같은 LTTE의 조직력 및 자금 자금 조달능력으로 인해 1980년대에는 대정부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할라족과 타밀족간에는 인종, 문화, 종교적 차이가 있으나 타밀족이 분리를 추진하게된 것은1965년이며, 1975년 이후에는 간헐적인 충돌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타밀족의 분리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 7월 이후로 동월 타밀족의 본거지인 자프나(Jaffna)반도에서 몇 명의 정부군이 사망하였는데, 이로 인해 싱할라족의 타밀족 대학살(약 1천명)이 전국적으로 발생하였고, 동년 타밀일람해방호랑이(LTTE)가 결성되었다. 1986년 LTTE는 유사 타밀 무장조직인 TELO의 지도자를 모두 살해하고, 1989년에는 모든 타밀 무장조직을 통합하였다.
인도는 스리랑카 정부의 요청으로 1987년 6월 평화유지군 성격의 인도군(IPKF)을 파견하였으나, 1989년까지 2,500명의 희생자를 낸 후 철수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정부군-반군 간의 전투는 여전히 지속되었으나 종전을 이끈것은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과 그의 형제들이다. 동생 고타바야 국방장관, 대통령의 자문역인 바실3형제의 강력한 초토화 작전으로 결국 2009년 5월 18일 정부군의 총 공세로 종전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도 남부는 타밀족의 근거지이며 싱할라족은 인도 중북부 지역의 민족이라는 점인데 이런 지리적 이격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는 싱할라족이 다수를 점유하고 불교를 믿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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