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00년 전에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막부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여러 무사 세력이 서로 대립하는 혼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를 전국 시대(15세기 중엽~16세기 말엽)라고 한다. 천황의 권위가 이미 땅끝으로 떨어져 있던 상태에서 오닌의 난으로 인해 쇼군의 막부까지 권위가 같이 떨어지자, 각 지방의 다이묘(영주)들과 사무라이들이 내가 최고가 되겠다고 들고 일어나 치고 박으며, 어제의 부하가 오늘의 적이 되는 하극상이 비일비재하던 시대였다.
▣다이묘(일본어: 大名)는 10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며 권력을 누렸던 영주를 말한다. 무로마치 시대부터 전국 시대를 거쳐 에도 막부 시대까지 다양한 계급의 변천사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쇼군 바로 아래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다이묘들은 사무라이들을 고용하여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도록 하곤 하였다. 에도 시대에는 주로 1만 석 이상의 영지를 막부로부터 부여받은 무사를 지칭하였다.
다이묘 중에서 100만 석 이상의 거대 다이묘들은 따로 분류되었다. 이 거대 다이묘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모리 데루모토, 우에스기 가게카쓰, 다테 마사무네 등의 다이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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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묘들의 통치는 1871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적인 현도부 제도가 완성되면서 소멸되었다.
이렇게 하극상으로 새로이 나타난 다이묘뿐 아니라 기존의 슈고 다이묘 중 살아남은 다이묘 혹은 이런 다이묘들이 서로 싸우다 몰락한 틈을 타 스스로 다이묘로 성장한 옛 소규모 호족 등 이 시대의 다이묘들은 막부나 조정의 권위는 빌릴지라도 이들의 대리 지배자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법령을 제정하는 등, 독립적인 특성이 더욱 강해졌다. 역사가들은 이들을 전국 다이묘라고 불러 이전의 슈고 다이묘 등과 구별한다.
1세기에 달한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을 끝내고 오다 노부나가가 통일하는 게 가까워졌다. 노부나가는 현 아이치현의 일부인 오와리의 이름 없는 영주에서 일본 중부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나 1582년 부장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배반으로 죽었다(혼노지의 변).
오다 가의 졸병으로 출발하여 노부나가의 신뢰받는 부장으로 성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것을 기회로 삼아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되었다. 도요토미는 남은 다이묘들에 대한 통제를 확립했으며, 천한 출신 때문에 쇼군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대신 조정의 최고위직 간파쿠에 취임하여 도요토미 정권을 세웠다.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은 다시금 정치적 혼란에 접어들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것을 기회로 삼았다. 히데요시는 죽기 전에 도쿠가와, 우키타, 마에다, 우에스기, 모리의 다섯 장수를 5대로(五大老)로 임명하여 그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섭정으로 삼았다.
1599년 마에다 도시이에가 사망하기 전까지 5대로의 상호 견제 속에서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후에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에 불충하다는 탄핵으로 내란이 재개되어, 세키가하라의 전투로 이어졌다. 세키가하라의 승리자가 된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의 지배를 끝내고 스스로 쇼군의 직위에 올라 일본의 마지막 막부가 된 에도 막부를 건설하였다. 에도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까지 유지되었다.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1534년 6월 23일 ~ 1582년 6월 21일 49세 쿠데타로 자결,
↕ 3년차 : 직전신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1537년 3월 17일 ~ 1598년 9월 18일 62세 사망,
↕ 6년차 : 풍신수길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1543년 1월 31일 ~ 1616년 6월 1일 74세 사망
덕천가강
대국 (13개 국)
야마토국·가와치국·이세국·무사시국·가즈사국·시모사국·히타치국·오미국·고즈케국·무쓰국·에치젠국·하리마국·히고국
이 중 가즈사·히타치·고즈케는 친왕을 임명하는 국이다.
상국 (35개 국)
야마시로국·셋쓰국·오와리국·미카와국·도토미국·스루가국·가이국·사가미국·미노국·시나노국·시모쓰케국·데와국·가가국·엣추국·에치고국·단바국·다지마국·이나바국·호키국·이즈모국·미마사카국·비젠국·빗추국·빈고국·아키국·스오국·기이국·아와국(阿波)·사누키국·이요국·부젠국·분고국·지쿠젠국·지쿠고국·히젠국
중국 (11개 국)
아와국(安房)・와카사국·노토국·사도국·단고국·이와미국·나가토국·도사국·휴가국·오스미국·사쓰마국
하국 (9개 국)
이즈미국·이가국·시마국·이즈국·히다국·오키국·아와지국·이키국·쓰시마국
전국 시대의 주요 다이몬
오닌의 난 이후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하기까지 약 100년은 실력으로 장원을 손에 넣고, 토착 무사들과 농민들 그리고 영토 전체를 지배한 ‘전국(戰國) 다이묘’들이 영토 확장의 야욕을 불태운 ‘전국 시대’였다. 전국 다이묘들은 대부분이 슈고 다이묘의 부하들로, 우에스기(上杉) · 아사이(淺井) · 오다(織田) · 모리(毛利)처럼 자신의 주군을 무찌르고 그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자신의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그 영토에서만 통하는 ‘분국법(分國法)’을 제정해 마치 독립된 국가처럼 다스렸다.
노부나가 ·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
오와리(尾張) 국의 다이묘였던 오다 노부나가는 기후(岐阜) 지역을 거점으로 세력을 펼쳐 나갔다. 1560년에는 오케하자마(桶狹間)의 전쟁에서 이마카와 씨를 정벌하고, 1570년에는 아네 강 전쟁에서 아사이 ·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찔렀다. 1571년에는 히에이 산 엔랴쿠 사를 통째로 불태우고, 1575년에는 나가시노(長篠) 전쟁에서 도쿠가와 군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다케다 가쓰요리 군에 크게 승리했다. 그 후로도 승승장구하다 1582년에 쓰러졌다. 그 뒤를 이은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히데요시는 시코쿠, 규슈, 오다와라, 오호 지역을 평정하고 전국 통일을 이루어 냈다.
이에야스의 전국 통일-에도 막부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그 세력은 점차 약해졌다. 한편, 관동 지역을 다스리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 출병하지 않고 세력 증강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도요토미 씨와 손을 잡은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를 비롯한 서군(西軍) 세력들과 도쿠가와 측 다이묘인 동군(東軍) 세력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이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에야스는 전국을 지배하는 실권자가 되었다. 그는 에도에 성을 세우고 그곳을 거점으로 1603년에 에도 막부를 열었다.
1664년 에도 시대의 주요 세력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군 측에 가담했던 다이묘의 영지를 몰수해 동군 다이묘들에게 포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도요토미의 측근이었던 다이묘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영지를 몰수하고 먼 지방으로 보냈다. 이들을 도자마(外樣) 다이묘라고 한다. 그리고 에도와 가까운 영지는 도쿠가와 집안과 가까이 지내는 번(친번 다이묘)과 후다이(譜代) 다이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이 에도 막부의 다이묘 통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260년 동안 유지되었으나 여기에 불만을 품은 번들이 훗날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
막부 말기 유신의 군웅 1867년, 265년 동안 이어졌던 에도 막부는 종언을 고하고 근대국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격동의 막부 말기를 이끌고, 막부를 쓰러뜨린 원동력이 된 것은 사쓰마(薩摩) 번과 조슈(長州) 번을 중심으로 한 서남웅번(西南雄藩, 서남쪽 지방의 큰 번)이다. 특히 도사(土佐) 번의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하급 무사 출신의 젊은이들이었다. 서양 문명을 접하고 해외로 눈을 돌린 그들은,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다. |
출처:cafe.daum.net/korjapanhi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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