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

frog.ko 2020. 11. 16. 05:46

스페인 내전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당시 스페인은 리프 전쟁에서 크게 고전하고 경제적 위기를 불러온 왕정의 무능과 정치적 부패 등으로 정세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스페인 제1공화정부터 스페인 내전 시점까지 무려 40여 차례의 쿠데타와 60여 차례의 정치적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군부는 심심하면 쿠데타를 일으켰다.

 

1931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공화파가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다. 여성이 최초로 투표권을 행사한 1933년 선거에서는 우파가 승리를 거두었으나 1936년 선거에서는 좌파 연합인 인민전선이 다시 승리하여 마누엘 아시냐 총리를 중심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하였다. 좌파 정권의 탄생과 개혁에 불안을 느낀 군부가 프란시스꼬 프랑꼬(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1936~1939)이 발발하였다.

 

공화파는 쿠데타군보다 도덕적으로는 우위에 있었으나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이질적인 집단의 혼합체로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전투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반면 국민전선은 잘 훈련된 군대, 수적인 우세 그리고 독일과 이태리의 파시스트 정권의 지원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세계대전을 벌이기 전에 실전연습과 무기실험을 위해 프랑꼬 장군에게 물자, 무기, 비행기, 군대를 지원했다. 반면 공화파는 소련과 멕시코로부터 무기, 식료품, 비행기, 군사 고문단 등을 지원받는 한편, 미국의 링컨 여단 3천명과 세계 각국에서 온 반파시스트 국제여단 10만 명의 지원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은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내전은 주로 유혈이 많은 소모전으로 이어졌고 양쪽 모두 잔학행위가 심했다. 전선에서만 약 백만 명이 전사하였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쌍방에서 약 20만명이 살해되었다. 처형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몇 년 동안 계속되어 그의 통치에 있어서 다른 어떤 면보다도 더 많은 비난을 받은 원인이 되었다.

 

전후에는 정치인, 지식인, 작가, 예술가 등을 포함해 약 50만명의 전문직 인재들이 주로 프랑스나 중남미로 망명하는 바람에 전후 국가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진정한 평화가 온 것은 아니었다. 나라는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고 화해를 통한 사회통합이 실패하여 그 여파는 후세에까지 이어졌다.

공화파 정부에 대한 국가별 지원병 수(약간 오차는 있음)
나치 독일+오스트리아 연방국: 5,000
이탈리아 왕국: 3,350
미국: 2,800. 사망자 750여명.
영국: 2,000폴란드 제2공화국: ,113
캐나다: 1,400
소련: 3,000
헝가리 왕국: 1,000
발칸 반도 지역 국가: 2,095
노르웨이: 225덴마크: 500스웨덴: 500
벨기에: 1,700
기타: 5,000
공화국 정부에 의해 정식적으로 집계 된 공화국 정규군 휘하에서 싸운 국제 여단원들만 친 것.
국민전선에 대한 지원병 수 
스페인령 모로코: 75,000
이탈리아 왕국: 50,000
포르투갈 제2공화국: 20,000
나치 독일: 16,000
아일랜드 자유국: 600명 

카탈루냐

'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시아 '적백내전'  (0) 2020.11.24
용병 국가가 될 뻔한 섬나라 '코모로'  (0) 2020.11.17
장개석의 치명적 실수  (0) 2020.11.11
일본 전국시대  (0) 2020.10.29
리비아 내전  (0) 202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