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전쟁

카슈미르 분쟁

frog.ko 2020. 11. 5. 23:41

카슈미르 분쟁은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싸고 인도, 중화인민공화국, 파키스탄 3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 분쟁이다. 현재 인도는 잠무, 라다크, 시아첸 빙하 대부분 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은 악사이친으로, 또한 중국은 1963년에 카라코람 회랑을 통치하에 두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1947, 1965, 1971년 총 3(인도-파키스탄 전쟁), 중국은 한번의  전쟁 (인도-중국 전쟁)을 겪었다. 1990 년 이후 잠무 카슈미르 주는 라슈카레타이바 등 카슈미르 분리주의자와 인도군의 충돌이 반복되어 수천 명 규모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면적은 22만여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인구는 카슈미르 서쪽지역인 파키스탄령 카슈미르가 380만명, 인도령 카슈미르(인도에선 잠무-카슈미르주로 칭함)820만명 가량이다. 면적의 90%는 산악지대고 해발고도 8m가 넘는 봉우리가 6개나 있다.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카슈미르는 수많은 외침으로 안정적 정권을 유지한 시기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1586년 무굴제국에 복속되기 전까지는 대체로 독립을 유지했다. 인도를 통일하고 북상한 무굴제국은 카슈미르의 정신적 지도자들에게서 직접 통치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때는 제국이 선정을 베풀어 카슈미르 주민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이후 카슈미르는 시크교도 통치를 거쳐 인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1차 앵글로-시크 전쟁(184546)에서 시크 왕국이 패한 직후 마하라자 굴라브 싱(17921857)이 세운 도그라 왕조(1846)가 현재의 잠무카슈미르주의 첫 힌두 집권세력이었다.

 

1947년 영국이 인도 통치를 포기하자 이슬람 연맹은 파키스탄으로, 힌두 세력은 인도로 분리 독립한다. 이때 불거진 문제가 카슈미르 통치권이었다. 이슬람교였던 카슈미르 주민 대다수는 파키스탄에 편입되길 원했으나, 힌두 왕조가 세운 도그라 왕국은 1947년 인도의 바라물라 행정구를 침공한 파탄족을 토벌하기 위해 인도군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카슈미르의 마하라자였던 하리 싱은 인도 연방 가맹을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현재 카슈미르 지역을 더 많이 영유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로 카슈미르 전체의 63%나 차지한다. 하지만 거주 인구 77%가 무슬림으로서 인도의 주들 중에서 무슬림이 힌두교인보다 많은 유일한 주이다. 남한 면적의 두 배나 되는 땅이니 만큼 카슈미르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불교나 힌두교가 우세한 지역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역시 이슬람이 우세하다. 인도의 무슬림들은 심한 차별을 받는데 이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며, 이 지역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과의 병합을 원한다. 무슬림 주민들은 틈만 나면 시위를 벌이며 아예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당연히 인도 정부가 허용할리가 없기에 주둔 인도군과의 마찰이 심하다.

 

인도령 카슈미르는 인도 최북단의 지역이자 파키스탄과의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카슈미르의 일부분이다. 넓이는 101,387km²로 카슈미르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며 남한과 비슷한 크기이다.

 

아크사이친은 중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이다. 중국어로는 아커사이친이라고 한다. 면적은 38,850 km²이고 길기트, 면적은 72,971이다.

 

인도는 잠무, 라다크, 시아첸 빙하 대부분 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은 악사이친으로, 중국은 1963년에 카라코람 회랑을 통치하에 두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1947, 1965, 1971년 총 3(인도-파키스탄 전쟁)을 치뤘다. 중국은 1962년 인도와 벌인 전쟁으로 카슈미르 동부 산들의 통제력을 확보해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다. 1990 년 이후 잠무 카슈미르 주는 라슈카레타이바 등 카슈미르 분리주의자와 인도군의 충돌이 반복되어 수천 명 규모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아크사이친 상세

 

Linguistic map of Indian Kashm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