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케언 제도(Pitcairn Islands)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영국의 해외 영토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자치권을 가진 지역 중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영토도 가장 작다. 핏 케언은 핏 케언 제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섬으로 타히티에서 동남동으로 2170km, 이스터 섬에서 서쪽으로 1570km, 뉴질랜드에서 북동쪽으로 5310km 떨어져 있다. 섬은 길이가 약 3.2km (2 마일), 너비가 1.6km (1 마일)이다.
현재 이 섬의 인구는 50명으로, 이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속령이다. 1937년에 최고점 인 233 명으로 증가했으나 2 차 세계 대전 이후 핏케언의 인구 감소는 주로 젊은 세대가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기회를 가진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1767년 영국의 해군장교 필립 카터렛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 섬을 맨 처음 발견한 항해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영국 군함 '바운티호'의 폭동 승무원과 타히티의 폴리네시아인 동조자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했다. 일등 항해사 플레처 크리스천이 이끌던 승무원들은 빵나무 묘목을 싣고 타히티에서 서인도 제도로 항해하던 중 폭동을 일으켜 선장 윌리엄 블라이와 그를 따르던 여러 선원들을 바다에 떠내려보내고 오스트랄 제도를 향해 항해했다.
대부분의 핏 케언 섬 주민들은 Fletcher Christian이 이끄는 폐하 무장 선박 현상금의 9 명의 반란자들의 후손으로, 1790 년에 6 명의 폴리네시아 남성, 12 명의 폴리네시아 여성이 무인도인 핏 케언 섬에 착륙했다.
폭동자들과 타히티인 동조자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도착한 뒤 해안으로 가 배를 불태워버렸다. 그 후 이 섬에서의 생활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808년 미국 포경업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1831년 타히티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만을 느끼고 핏케언으로 되돌아왔다. 그후 이 섬은 고래잡이 어선과 미국-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는 여객선들의 기항지가 되었다. 1856년 인구가 증가하자 일부 섬 주민들은 노퍽 섬으로 이주했으며, 지금까지 폭동자들의 후손들은 두 군데에 갈라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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