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 '십자군 전쟁'

frog.ko 2020. 11. 23. 13:12

십자군 전쟁(The Crusades)1095년부터 1291년까지 간헐적으로 일어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일어난 전쟁이다.

 

1071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로마노스 4세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게 대패한 뒤 근동 일대에 대격변의 시기가 찾아오고, 결과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기존 핵심 지역이던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잃게 되었다.

 

1081년 신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즉위하여 이를 수습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자 했지만, 남이탈리아의 노르만족, 북방의 페체네그족, 그리고 아나톨리아의 셀주크 제국 등 사방에 적들이 너무 많아 약해진 제국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때문에 제국은 전쟁으로 인한 군비가 팽창하는 1040년대를 전후하여 꾸준히 해오던 지원 요청을 보다 다급하게 해오고 있었다.

 

그러한 요청의 일환으로 10953월 피아젠차에서 열린 공의회에도 사절단을 파견했는데, 피아젠차에서 이들을 접견한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성스러운 교회를 수호할 수 있도록 이교도들에게 맞설 원군을 보내달라"정도의 내용의 요청을 듣고는 본격적으로 십자군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 그렇게 109511월의 클레르몽 공의회를 기점으로 서유럽은 약 200년간 여러차례에 걸쳐 십자군을 파견하게 된다.

 

1차 십자군 : 1096~1099

목표 : 예루살렘 수복

경과 및 결과 : 예루살렘 수복 후 팔레스티나 지방을 5개의 라틴왕국(예루살렘왕국)으로 분할 지배.

2차 십자군 : 1147~1148

목표 : 다마스쿠스 공략

경과 및 결과 예루살렘에는 기독교권인 라틴왕국이 있었으나 주변의 이슬람권이 통일되자 위협을 느낀 기독교권의 공격 그러나 많은 병력에도 불구 이슬람권의 거센 저항에 실패함.

3차 십자군 : 1189~1192

목표 : 예루살렘 수복

경과 및 결과 이슬람권을 최초로 통일한 시리아와 이집트의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라틴왕국을 무너뜨리자, 이에 십자군 원정이 시작됨. 결국 프랑스와 잉글랜드, 신성로마제국의 연합군이 주축이 되었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결국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혼자 싸우게 됨. 사자왕 리처드는 강력한 살라딘을 상대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예루살렘수복을 포기함.

 

3차 원정은 개인적으론 가장 유명한 십자군 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은 바로 2차와 3차 십자군 원정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약간의 픽션을 곁들여 만들어낸 것이죠. 3차 십자군 원정은 중세유럽의 기사도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기사들의 모험담 같은 이야기가 바로 이 시기에 많이 나타났지요. 로빈 훗도 바로 이때의 이야기다..

4차 십자군 : 1202~1204

목표 : 강력한 이슬람국가인 이집트공략

경과 및 결과 강력한 이슬람권인 이집트를 공략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나 그 전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베네치아가 헝가리를 침공, 콘스탄티노플까지 점령. 새로운 라틴왕국을 건설함. 결국 목표로 했던 이집트 원정은 시작도 못함

5차 십자군 : 1218~1221

목표 : 예루살렘 수복

경과 및 결과 : 교황의 주체가 아닌 아크레왕국(옛 예루살렘 왕국의 후신)쟝 드 브리엔느가 주축이 되었으나 실패.

6차 십자군 : 1228~1229

목표 : 예루살렘 수복

경과 및 결과 교황은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에게 십자군을 일으킬 것을 지시했으나 그가 시간을 끌자 교황이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 그 후 프리드리히2세는 이슬람권의 술탄과 협상을 맺어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받아냈으나 파문당한 자가 예루살렘을 통치할 수 없다 하여 교황이 십자군을 일으킴. 결국 프리드리히2세의 제국군에 십자군이 패함으로서 끝남.

7차 십자군 : 1248~1249

목표 : 예루살렘 수복

경과 및 결과 신성로마제국이 명목상 통치하던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권의 공격으로 함락하고 이슬람군이 그리스도인을 학살하자 프랑스의 성왕 루이 9세의 주도로 십자군이 조직, 그러나 이집트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전쟁에 패해 루이9세가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남.

8차 십자군 : 1270

목표 : 이집트침공과 예루살렘수복

 

경과 및 결과 7차 십자군을 일으킨 루이 9세가 다시금 십자군을 일으킴. 이번엔 시칠리아 왕인 샤를과 함께 했으나 루이 9세는 튀니지에서 병사하고 샤를은 아크레로 가서 이슬람군을 공격..그러나 반대로 이슬람군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결국 라틴왕국의 최후의 보루인 아크레가 함락,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십자군은 모두 없어지고 십자군 원정도 끝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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