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독일통일의 시작,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

frog.ko 2020. 12. 6. 01:15

프로이센 왕국 혹은 쾨니히라이히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가가 지배했던 독일 북부 지역에 위치한 왕국으로, 1701년부터 1918년까지 존속한 독일 제국 내의 왕국으로 신성 로마 제국 동북쪽의 미약한 약소 왕국에서 출발하여 독일 제국 수립의 주역으로 성장한 국가로, 독일인의 민족적 특성을 빚어낸 현대 독일연방공화국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독일 지역의 역사는 481년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의 문을 연 메로빙거 왕조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궁재 피핀이 정권을 장악하고 새로이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다(751년). 그의 아들 카롤루스(샤를마뉴) 대제는 왕국의 영토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새로 얻은 변방 지역에 ‘마르크(Mark)'를 설치했다.



5세기 말 프랑크 왕국은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뒤 843년에 베르됭 조약에 의해 서 프랑크·중 프랑크·동 프랑크로 삼분(三分)되었다. 이들은 각각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기원이 되었다.



962년 동 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가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받아 신성 로마 제국(Holy Roman Empire)의 문을 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17세기에 이르러 30년 전쟁(1618~1648년) 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인해, 결국 300여 개의 독자적인 영방 국가(각각의 제후들이 독립된 나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중 프로이센 지역 튜튼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인 호엔촐레른가의 알브레히트는 루터파로 개종하고 1525년에 자신의 봉토를 기사단에서 분리하여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공작령으로 만들었다. 

 

튜튼 기사단은 1466년 제2차 토룬 조약을 체결한 이래로 폴란드의 신하로 전락하였으므로 새로이 탄생한 프로이센 공국도 폴란드의 봉신국으로 인정받았는데, 이때 프로이센 공국의 상속은 알브레히트의 후손만이 계승할 수 있도록 조약되었었다.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은 남독일 안스바흐 제후의 차남으로 역시 본가 안스바흐도 나란히 루터교 국가가 되었다. 이후 1618년 이전부터 같은 호엔촐레른 가문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더불어 상호 계승 조약을 맺었는데, 상대편 가문이 모든 영지를 물려받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1618년 프로이센 공작 알베르트 프리드리히가 남자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알베르트 프리드리히의 맏사위이자 같은 가문 친척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가 장인의 영지를 승계하였고 이에 따라 호엔촐레른가의 통치 하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프로이센 공령과 브란덴부르크의 결합은 호엔촐레른 왕가가 유럽 강국의 대열에 끼기 위해 반드시 이룩해야 할 과제였다. 요한 지기스문트의 손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1640~88 재위)는 스웨덴-폴란드 전쟁(1655~60)이 벌어지는 동안 군사 개입과 외교 노력을 통해 폴란드와 올리바 강화조약(1660)을 맺어 프로이센 공령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게 했다. 이로 인해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3세 때부터는 프로이센의 왕을 칭하면서 왕국을 세울 수 있게 된다.

폴란드 왕령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
프로이센 왕국
1681년 유럽지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위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1618년 이래로 독일인의 식민 등에 의해서 세워진 프로이센 공국과 합하여, 1701년 1월 18일 쾨니히스베르크를 수도로 삼아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1세가 되었다.

 

프로이센 왕국은 동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 클레베-마르크 등 여러 곳으로 떨어져 있는 영토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은 개별적인 법률과 신분제 의회를 갖고 있었으나,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면서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시대에는 절대주의 국가체제가 확립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때에는 대북방전쟁에 참전, 오데르 강 하구의 주요 항구인 슈테틴을 확보하였고 프리드리히 2세 때에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 참전해 오스트리아 최고의 꿀땅인 슐레지엔을 장악하였으나, 7년 전쟁에서는 크게 밀리면서 나라가 완전 망할 뻔 했지만 여러 차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이 북독일의 강자임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1차 폴란드 분할 때에는 서프로이센을 확보하면서 브란덴부르크 본토와 동프로이센을 연결하는 숙원을 달성하였고 프리드리히가 사망한 이후에는 추가로 두 차례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바르샤바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프랑스 혁명전쟁에 참전했다가 가장 먼저 프랑스 혁명정부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마인 강 이북의 영토 점유를 인정받으면서 나폴레옹이 등장한 이후에는 오히려 프랑스 편에 붙어 하노버와 브레멘 등을 합병하는 등 크게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당대의 먼치킨 나폴레옹한테 도전했다가 제4차 대불동맹 전쟁에서 지고 틸지트 조약(1807)으로 그동안 확보한 영토들을 거의 다 잃고 일시적으로 속국이 되기도 하였으나, 나폴레옹이 몰락할 즈음에 다시 동맹군에 가담해 승전국 중 하나가 되었고 빈 회의에서 북부 작센과 베스트팔렌·라인란트 등의 새 영토를 얻었다.

 

이후 나타난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의회를 정치력으로 무력화시키고서는 아예 수족으로 부려가면서 독일 통일을 위한 대업을 실시, 슐레스비히 전쟁(1864),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에서 승리하여 1871년 연방 형식으로 독일 통일을 완수, 독일 제국을 수립하였다.

 

최초의 중앙집권적 근대 통일 국가를 건설한 국가로서 프로이센은 일견 독일이 가지는 정체성의 뿌리가 되는 나라지만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의 결과 현재의 독일은 옛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 중 절반 이상이 폴란드와 러시아에 할양된 상태이다. 왕국으로 승격될 당시의 영토로만 한정할 경우 브란덴부르크 정도만 제외하면 독일에 남아있는 영토가 전무하다.

 호엔촐레른 왕조의 발상지 호엔촐레른 성(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프로이센 왕국 1866
프로이센 왕국 1866 (파란색) 내에있는 프러시아의 브란덴부르크 주  (빨간색 ).

 

독일 연방의 영역

1871년부터 1918년까지  프로이센 왕국

가상지도 greater german

MARK :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에서 군사상 중요한 변경 지역에 설치하던 행정 구역으로, 변경백이라고 한다. 식민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마르크의 통치자에게는 자유로운 군사 지휘권이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통치자는 행정·사법상의 최고 권력까지 누리고, 작위가 대를 이어 세습되기 때문에 후에 강력한 영방 군주로 성장하게 된다.

HRE: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

Greater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