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과 중부유럽을 무대로 벌어진 30년 전쟁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다. 유럽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사망자가 많은 전쟁 중 하나였으며, 사망자수는 800만 명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전 1610년대 초에 유럽의 정세는 크게 바뀌고 있었다. 가장 큰 역사적 변화는 스페인 제국의 몰락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스페인 제국이 쇠퇴를 거듭할 무렵, 유럽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해 스페인 제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성장 세력은 프랑스 왕국이었다. 백년 전쟁 이래로 봉건제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 프랑스 왕국은 앙리 4세의 통치 하에 중앙 집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유럽의 북쪽 지대에서도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이룩한 국가들이 등장했다. 스웨덴 제국, 엘리자베스 1세의 잉글랜드 왕국, 덴마크-노르웨이가 이 세 국가이다. 먼저 잉글랜드 왕국은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 이후 개신교도 국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30년 전쟁은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교의 대립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전제군주정과 봉건 제도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신성 로마 제국과 이 국가의 종교 정책을 지지하는 제후국 및 반대하는 제후국 간의 다툼이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강대국이 개입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각국의 이해 관계가 교차하는 근대적인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이 국가들은 수많은 용병을 고용했으며 전쟁이 지속될수록 종교적 색채는 옅어지고 유럽의 정치적 구도에서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신교지원)의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전쟁은 새로 선출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그의 영토에서 반종교개혁을 시행하려고 함으로써 발발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을 그의 국민들에게 강요했다.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보장받은 종교 선택의 권리가 위반되자 분노하여 개신교 제후동맹을 결성하여 이에 반대했다. 페르디난트 2세는 그의 이전 황제였던 루돌프 2세에 비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친가톨릭 성향이 강한 정책을 폈다.
총 4번에 걸쳐 따로 벌어진 전쟁은 유럽 각국이 참여해서 길어진 면도 있지만, 신교나 구교나 한 쪽이 압도적인 세력을 갖지 못한 측면이 크다. 한쪽이 우월한 세력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격멸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 된 것이다.
30년 전쟁으로 인해 독일 전역은 기근과 질병으로 파괴했다. 특히 보헤미아 왕국과 남부 네덜란드를 비롯한 독일과 이탈리아에 위치한 국가들의 인구가 급감했다. 용병과 병사들 모두 기여금을 받기 위해 공헌을 위장하거나 마을을 약탈했으며 점령당한 영토 거주민들의 생활고는 심해졌다.
참전국 대부분은 파산 위기에 몰렸지만, 유럽 내부에서는 신흥 강대국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네덜란드 공화국은 독립을 공인받은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잉글랜드 왕국, 프랑스, 스웨덴 제국도 전쟁 이후 상당한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을 대신해 새로운 유럽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후 17세기 후반 신성 로마 제국의 권위는 추락하게 되었다.
독일은 후일 이 시대를 암흑시대로 정의내릴 정도로 국제적 입지를 상실하고 19세기까지 작은 소국가로 뿔뿔이 분열됐으며 프랑스는 이 전쟁 이후 강대국으로서 유럽의 패권을 호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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