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형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에 발명한 돌격소총이다.
단순함과 높은 신뢰성,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는 닭 한 두 마리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암시장에서는 100달러에서 1000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AK-47은 가장 많이 생산된 돌격소총이다. 정품과 불법 복제판까지 합치면 대략 2억정이 생산됐다. 그리고 총에 무지한 사람도 1시간 정도의 설명을 들으면 바로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고 총기 사용이 가능한 정도로 간단하고 부품 약 100개 중 4개 정도만 작동해도 쏠 수 있다.
또 진흙이나 사막 같은 곳에서도 잘 작동된다. AK-47을 만들 당시 M1 개런드 소총과 독일의 Stg44와 MP40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한다. AK-47은 프레스 방식으로 총을 만들기 때문에 전시상황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
AK 소총을 개발한 칼라시니코프는 소련의 군인이자 무기 설계자로 돌격소총 AK-47, AKM, AK-74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M16 소총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와 함께 현대의 돌격소총의 양대 산맥을 구축한 인물. 그밖에 RPK 분대지원화기, PK 기관총 등 다양한 명작 총기를 개발 했다.
시베리아에서 태어난 칼라시니코프는 1938년 18살 나이로 소련군에 입대하였고 신장이 162cm로 작은 편이여서 전차병으로 근무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키예프 사단 소속 T-34를 몰고 전차장으로 참전, 실패로 끝난 브리얀스크 반격전에서 그는 주변에 독일군 전차 위치를 보기 위해 해치 위로 몸을 내밀었는데, 독일군 전차에 포탑이 피격되면서, 어께 견갑골에 파편이 박혔고 팔을 쓸 수 없는 중상을 입어 후방으로 후송됐다.
20명의 부상병과 트럭에 실려서 후방으로 후송되는 중 매복한 독일군의 습격을 받았다. 소련 경비병들은 모신나강으로 무장했으나 매복에 걸린거라 전투는 근접전이였고, 볼트액션식의 모신나강을 든 소련군들은 뛰어난 연사력과 휴대가 편한 MP40로 무장한 독일군에게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살아남은 경비병들과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던 칼라시니코프는 요양 중 독일군의 MP40에 대응할 총기의 개발을 결심하며 총기 설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첫 번째로 만든 기관단총은 결함품이었고 이미 생산성, 내구성 등 많은 면에서 소련군을 만족시킨 PPSh-41이 등장한 상태여서 그의 첫 작은 좌절되었다. 당시 시모노프, 슈다예프 등은 그의 총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기 설계의 재능을 인정한 표도르 토카레프의 천거로 러시아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으며, 툴라 조병창으로 배치되어 총기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나이 23세에 일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군은 대전 말기 독일군의 신무기 StG44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와 비슷한 신형 무기를 장차 소련군 주력 개인화기로 삼을 계획을 세웠는데, 마침 서방 국가들도 돌격소총 개발에 들어갔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소련 정부는 빨리 돌격소총을 완성하라고 닦달했다.
경쟁상대 중 하나였던 토카레프는 정밀함을 중시했지만 칼라시니코프는 반대로 생각했다. 가능하면 구동부에 여유를 두자는게 그의 생각이였다. 그는 가스 실린더와 피스톤, 볼트와 공이 틈새를 무려 0.3 mm로 설정했는데, 총기 같이 정밀한 부품에서 이 정도 틈과 오차는 그 당시에도 충격적인 수준이였다. 그리고 병사들이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고장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움직이거나 분해되는 부품을 8개로 줄였다. 또한 야전에서 분해 할 때 나사도 필요 없이 탄피로 분해가 되게 설계했는데 이 부분은 독일제 총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약실에 이물질이 들어가도 노리쇠가 이를 밀어낼 수 있도록 노리쇠를 무겁게 했다. 덕분에 주퇴 반복이 길어서 적당한 발사속도를 가지며, 탄피가 빠져나가는 동안 약실을 충분히 식힐 시간을 주었고, 이물질이 좀 들어가도 노리쇠가 이를 밀어서 총 밖으로 보내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AK-47 프로토타입은 1946년도에 출시된 설계안 3개들 중 하나로 뽑혔으며, 연사 테스트에서 다른 설계자들의 2개의 후보 총기가 모두 탄이 걸리거나 폭발하는 등 결함을 보이고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소총이 유일하게 테스트를 통과해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소련군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고 1947년 첫 배치를 시작하여 AK-47이라고 명명되었다.
냉전 도중 소련이 닥치는 대로 뿌리고 면허 생산을 남발한 결과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총이 되었다. 현재 1억정이 넘는 생산량이 추정되며 세계 인구 77명당 1명꼴로 널리 보급된 총기로 한 자루가 고작 닭 한 마리 가격에 거래돼 '치킨건'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반세기 동안 AK47 돌격소총은 지구상에 가장 널리 퍼진 살상 도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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