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전쟁

일본제국의 삽질'야마토급 전함'

frog.ko 2021. 5. 23. 10:16

야마토급 전함은 해군의 확장을 제한해오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이 기어이 조약의 제한을 무시하고 건조한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다.

 

당초에는 총 8척의 건조가 계획되었고, 야마토급의 완성에 따라 이전 함급이었던 공고급,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은 모두 스크랩처리. 나가토급은 연습전함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산문제와 전쟁발발 등으로 인해 실제로 군함으로서 완성된 것은 3, 전함으로서의 야마토급은 단 2척에 불과했다.

 

초도함 야마토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기 직전부터 건조를 시작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취역하였으며, 크기나 배수량만 봐도 현대의 대형 크루즈선이나 중형 항공모함에 필적한다.

 

전함 야마토는 그야말로 거함거포주의의 정점에 달했다고 할만한 전함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고 이제는 깨질 이유도 없는 공전절후의 460mm 함포를 탑재한 전장 263m, 전폭 39m의 거대전함이다.

 

야마토급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주포는 전함의 주포로서는 세계 최대 구경을 자랑하는 18.1인치, 정확히는 46cm(!)에 달하는 45구경장 함포였다. 이 무지막지한 거포는 함선에 탑재된 대포 중 가장 거대한 대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야마토급 전함은 이 거포를 각 3문씩 총 3기의 주포탑에 장착하여 전방 2, 후방 1기의 총 9문을 탑재했다.

 

이 때문에 야마토급 전함은 일본 해군 최초의 3연장 주포탑을 탑재한 전함이기도 하다. 그 동안 다른 일본의 전함들이 기술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2연장 주포탑을 4~6기씩 배치하는 과무장으로 오만 가지 트러블을 일으켰던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에 비하면 꽤나 진보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거포들은 전면 660mm의 두터운 장갑을 자랑하는 포탑에 의해 방어되었다. 46cm 구경의 함포 3기를 장착한 포탑은 1기 당 중량이 무려 2,760톤에 달했다. 이는 일본의 최후기형 구축함인 아키즈키급의 기준배수량(2,700)보다도 더 무거운 정도였다.

순항중인 전함 야마토

이 거함에 맞먹는 덩치를 지닌 함포 군함은 영국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 정도이며 배수량으로 따지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한 규모에 비해 초라한 이력, 전과에 빗대어 여객선이라고도 불렸는데 실제로 태평양 전쟁 기간중 야마토는 취역 이후 자매함 무사시와 함께 트럭섬에 쳐박혀있던 탓에 일본 해군 수병들은 야마토급 전함을 야마토 호텔, 무사시 료칸(여관)으로 불렀고 세계에서 제일 쓸모없는 세 가지는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일본의 야마토 전함이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야마토급 전함 한 척의 건함(建艦) 예산은 당시 기준으로 무려 1억엔을 상회했다. 지금의 가치로만 해도 한화로 약 10조원을 우습게 넘는 금액이며,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1%(!)에 해당하는 황당무계한 금액이었다. 그 만큼 유지비도 어마어마하게 소모했다. 우선, 야마토급 전함은 항속거리가 대단히 짧았다. , 연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항속거리가 짧으면 작전 반경 또한 짧아진다. 승조원도 많았으므로, 필요한 보급 물자를 확보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야마토의 최후는 비참했다. 1945년 오키나와로 미군이 몰려오자 야마토 전함은 마지막 임무를 부여받았다.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해 고정 포대 역할을 하며 장렬히 전사하라는 것. 패전이 확실시 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으니 자살을 강요받은 셈이었다. 적재된 기름도 오키나와까지 편도로 갈 수준만 채워졌다고 한다.

1~4번함(이름: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111호함(예정함명: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