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프 체펠린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독일의 유일한 항공모함이었다. 1935년 11월 16일 발주되었고, 1936년 12월 28일 킬의 '도이체 베르케(Deutche Werke)'에서 준공되었다. 1938년 12월 8일 진수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하였고, 실전에 투입될 수 없었다.
1935년 아돌프 히틀러가 지시하여 건조를 시작하였다. 당시 크릭스마리네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은 1945년까지 4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대양함대를 건설하기 위한 Z 계획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애초에 함선설계기술이 열악한 독일이 독자적으로 제대로 된 항모를 만들 수 있을리는 만무했고, 독일 독자적으로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힘들다고 판단, 독일보다 육,공군 기술력은 딸리지만 상대적으로 해군 기술력이 우월한 일본 제국에게 도움을 청했고[2] 결국 일본의 기술 지원하에 건조가 진행되었다. 이때 방문한 항공모함이 이후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아카기. 다만 개조항모라는 특성상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는 듯하다. 덕분에 애당초 독일은 정규항공모함이었던 히류의 설계도를 원했지만 일본이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단은 전체적인 형상을 볼 때 아카기와 유사점이 상당히 보이는 것을 보면 아카기의 설계를 베이스로 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라프 체펠린의 건조에는 반대가 없었다. 아무리 항공모함보다 전함이 중시되던 시절이었다고 해도 항공모함 자체는 함대의 정찰용 및 선제타격용으로 가치가 확립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된 시기인 1935년에야 건조가 시작되었으므로 다가올 전쟁에 시간이 안 맞을 가능성이 많았지만, 당장 영국과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히틀러의 구두약속을 믿은 크릭스마리네는 원래의 건조계획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육군에 밀린 해군은 예산의 부족으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2척으로 줄인다. 당초 계획은 항모(Flugzeugträger) A~D의 네개의 함을 건조하는 것이었으나 C와 D의 건조는 시작되기도 전에 백지화된다. 게다가 원래 세계대전이 벌어지면 영국같이 해군에 중점을 둔 국가도 건조중이던 대형함선을 건조중지하거나 폐기처분할 정도로 상황이 안좋게 변한다.
1940년에는 'Flugzeugträger B' 건조가 중지되었고, 그라프 체펠린 제작은 인력과 재료 부족에 시달렸다. 필요한 함재기를 제 때에 공급받을 것을 보장받지 못했고, 기종은 변경되었다.
1943년에 이르러, 히틀러는 독일 해군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레더는 해임되었고 잠수함 함장인 되니츠는 해군의 수장이 되었다. 당시 95% 이상 완성되었던 항공모함 건조는 완전히 중지되었다. 모든 무장은 제거되어 노르웨이의 해안 포대로 이동되었다. 선체는 독일 해군의 경재(나무) 저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을 달리다가, 거의 완성되었던 항공모함은 소련군이 도시를 점령하기 직전인 1945년 4월 25일, 스테틴(Stettin; 현재 Szczecin)의 얕은 물에 침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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