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트알아랍 강은 이라크 남부에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합류하여 이란과 이라크 국경을 따라 200km를 흐르는 강이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에 샤트알아랍은 이란과의 국경이었다. 1913년 이슬람의 두 강대국인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이란은 국제적 관례인 '탈베크(Talweg)의 규칙'을 따라 샤트알아랍의 가항수로(可航水路)의 가장 깊은 곳(流心)을 양국 간의 경계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오스만투르크가 패하고, 이라크는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32년 이라크는 영국이 뒤를 돌보아 주는데 힘입어 샤트알아랍의 동쪽(이란쪽) 연안으로 국경선을 긋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란은 탈베크의 규칙을 지켜 강 중앙을 경계로 하자고 했지만, 러시아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랐다.
1968년 영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이라크는 1969년 4월 샤트알아랍이 자국 영토라고 선언하고, 이 수로를 운항하는 이란 선박이 이란 국기를 달 수 없으며, 이란 해군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이란의 팔레비(Pahlevi) 국왕은 1937년의 국경조약을 파기하고 군대의 호위 하에 이란 국기를 단 선박이 수로를 운항하게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국내에서는 쿠르드족 반군을 내전을 벌이고, 이스라엘과 맞서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라크는 이란의 무력시위에 대응해 군사적 행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1975년 이란이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 반군을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양국은 샤트알아랍 수로의 중앙선을 경계선으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알제 협정(Algiers Accord)이라고 한다.
이 협정은 5년만 물거품이 되었다. 1979년 7월 야심만만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집권한데다 이듬해 1980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전쟁은 후세인의 야심에서 시작되었다. 아랍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후세인은 페르시아(이란)를 증오했고, 마침 이란에 혁명이 일어나 혼란스러운데다 수니파 국가의 단결을 꾀할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의 서방국가들이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던 시기여서 좋은 타이밍이라고 보았다.
1980년 9월 17일 이라크는 갑자기 알제 협정의 파기를 선언하고, 샤트알아랍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5일후인 9월 22일 사담 후세인은 이란 공군기지를 폭격하라고 자국 공군에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시작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이나 끌었다. 죽은 자가 50만명, 사상자도 비슷한 숫자였다. 100만명의 사상자를 낸 두 나라의 전쟁은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승자 없는 전쟁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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