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즈메니아섬은 호주 최남단의 큰 섬이자 이 섬을 중심으로 몇몇 섬을 더 포함하는 주. 태즈메이니아 섬 자체의 면적은 62,409km²로 제주도 34배이며, 부속도서까지 합하면 68,401km². 남한 영토의 62.2%, 한반도 및 부속도서 전체의 28.3% 정도의 크기이다. 인구는 51만 명 수준으로 제주도보다 조금 적다.
정책에 의해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플린더스 섬으로 이동했다.
태즈메이니아는 온대 기후의 섬이며, 유일하게 섬으로 이루어진 주이다. 특별한 점은 태즈메이니아는 하트 모양의 섬이며 사과 모양의 섬으로 푸른 녹색 계곡, 한적한 마을과 촌 그리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1936년 9월 16일, 마지막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호바트 동물원에서의 죽음으로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는 모두 멸종되었다.
이 섬에 유럽인 최초로 도착한 아벌 얀손 타스만(Abel Janszoon Tasman)의 이름을 따서 (영어식 발음으로)태즈메이니아로 불리고 뉴질랜드와 호주 사이의 바다는 태즈메이니아 해(海)라고 불린다. 태즈매니아, 태즈마니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도는 섬 동남쪽의 호바트로 섬 인구 50만 명 중 40% 가량이 거주한다. 이외엔 론세스턴, 데번포트, 버니 등의 도시가 있다.
35,000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한 분파인 팔라와(Palawa)가 거주하고 있었다. 빙하기에는 호주 대륙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빙하기가 끝나며 배스 해협이 생기면서 1만 년 동안 고립되었다. 화전과 수렵 및 채집을 하며 살아갔고 해안의 주민들은 해산물을 주식으로 삼았다. 9개의 부족사회가 있었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타스만(Tasman)이 항해 중 이 섬을 발견했고, 1772년 프랑스 탐험가 마리온 뒤 프레스네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섬에 상륙했다. 1803년 영국이 정착지를 건설하고 리스던 코브라고 이름 짓고 다음 해 데이비드 콜린스의 주도 아래 태즈메이니아의 주도 호바트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1년 호주에 편입된다.
영국이 정착지를 건설할 때만 해도 원주민 인구는 약 5,000~15,000명이었으나 섬지형을 이용한 조직적인 인간사냥으로 인해 겨우 30년만에 원주민 인구는 300여명으로 급감했다.
1850년경에 이르러서는 순수 태즈메이니아 인들이 50여명으로 줄어들었고, 1876년 마지막 순수 태즈메이니아 인으로 생각되는 '투루가니니'(1812~1876)가 사망하면서 태즈메이니아 인들의 문화와 언어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들의 인골과 유해들은 19세기에 호주와 유럽에서 대량으로 수집되다가 20세기 후반되어서야 조금씩 반환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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