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

독일의 나미비아 원주민 대학살

frog.ko 2021. 8. 2. 09:45

1884, 독일 제국은 자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나미비아 지역을 보호령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대영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술수였다. 1885, 서양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위해 개최된 베를린 회담을 통해, 독일 제국은 나미비아, 카메룬,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를 손에 넣었다. 이 중 나미비아는 '남서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독일 제국 식민지의 한 축을 담당했다.

독일 제국은 18841915년 나미비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원주민에 대해 여러 차례 잔혹 행위를 했다.

 

헤레로·나마 집단학살은 1904년에서 1907년 사이 헤레로 전쟁 와중에 독일 제국이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오늘날의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인과 나마인에 대한 집단적 박해를 가한 사건이다.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 중 하나로 평가된다.

 

독일 제국의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남서아프리카의 한 부족이었던 헤레로족이 봉기를 일으켰다. 독일군은 헤레로족에게 저항을 중단하라고 경고했으나, 그 동안의 식민지인 차별 정책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헤레로족은 독일군의 경고를 무시했다.

 

봉기를 도모한 인물인 사무엘 마하레로의 주도 아래 헤레로군은 독일인 이주자의 마을을 습격해 농지를 불태우고, 독일군 140여명을 사살했으나 여성과 어린이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 봉기에는 나마족도 가세하였다.

 

이에 독일군은 즉각 반격을 시작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로타어 폰 트로타(Lothar von Trotha)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14000명의 독일군을 병력으로 보내 헤레로족을 진압하였다. 트로타는 헤레로족이 더 이상 독일 제국의 신민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눈에 보이는 헤레로족은 무기를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그리고 여성과 어린이들일지라도 절멸할 것을 명령했다.

 

독일군에 의해 물 보급로가 끊기고 보이는 대로 사살당하던 헤레로족 측에서는 어마어마한 피해자가 나왔으며 이에 봉기 주도자들이 항복을 위해 접근했으나 역시나 사살당하는 등 독일군은 항복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일군은 헤레로족을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보이는대로 모두 무참하게 죽였으며, 독일군의 진압 과정에서 1904년부터 1907년까지 85천명이었던 헤레로족이 15천명까지 줄었다. 이 학살에 의해 헤레로족의 80%가 몰살되었고 나마족은 절반이 몰살당했다.

 

살아남은 부족인들은 노예 수용소에 수감되어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복지에 기아나 질병에 시달려서 죽었다.

독일 식민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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