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시아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섬나라이다. 국어는 영어를 사용하며, 수도는 캐스트리스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고, 흑인이 대부분이다.
세인트루시아는 카리브 해의 다른 어떤 섬보다도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가장 높은 곳은 기미 산(Gimie)으로 해발 950m이다. 다른 또 하나의 산은 피톤즈로서 자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세인트루시아는 세계에서 활화산을 보물로 활용하고 있는 몇 안되는 섬나라이다. 캐스트리스이고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여기서 산다. 넓이는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약 605㎢)와 비슷한 크기에 해당된다.
세인트루시아는 기원전 1000년과 500년 사이에, 최초의 거주자들이 세인트루시아에 상륙했다고 보이나, 관련 유물이 적다고 한다. 이후 남아메리카 북부에서 온 사람들이 기원후 200년에서 400년 사이에 세인트루시아에 상륙했으며, 카리브족은 기원후 800년경 상륙한 것으로 보인다.
1500년대에 들어, 세인트루시아는 바티칸의 지도에 실리기 시작했으며, 155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의 해적이 세인트루시아를 찾아와 캠프를 건설했다. 16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인트루시아의 동남부, 지금의 Vieux Fort 지역에 네덜란드인들이 캠프를 건설했고, 1605년에는 영국인 67명이 세인트루시아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카리브인의 습격과 질병으로 인해 5주만에 19명만 생존하였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세인트루시아에서 도망쳤다. 1635년 들어 프랑스의 영유권 주장이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639년 에는 영국이 다시 정착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카리브인들에 의해 전멸당했다. 몇번의 실패 끝에, 1644년에 프랑스 원정대와 당시 마르티니크의 주지사가 정착지를 설립하는데 성공했다.
1664년에는 당시 세인트 키츠 네비스 주지사의 아들인 토마스 워너가 세인트루시아를 영국이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당시 세인트루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군대를 막아내기 위해 1,000명의 군사를 세인트루시아에 투입했지만, 질병이 돌아 2년만에 89명만 남고 다 사망했다. 프랑스는 1666년에 프랑스 서인도 회사를 통해서 세인트루시아를 되찾았고, 세인트루시아를 1674년 마르티니크의 관리하에 프랑스 식민지로 정식 편입했다.
1700년대 동안, 세인트루시아는 설탕 산업을 통해 번영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아직도 세인트루시아를 포기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은 170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722년에는 한 영국인이 세인트루시아에 상륙하여 정착지를 설립했지만, 영국군에게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도망쳐 나왔다. 7년전쟁 동안에 영국이 잠시 세인트루시아의 지배권을 획득했지만, 1763년에 파리 조약이 맺어져 다시 프랑스로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지배권을 다시 얻은 프랑스는 1765년부터 세인트루시아를 사탕수수 농장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세인트루시아의 주지사는 1794년, 세인트루시아의 노예제를 폐지한다. 그러나 1795년 설탕의 안정적 생산을 원하던 영국인 지주의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세인트루시아의 지배권은 1803년 영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영국은 세인트루시아의 노예제를 다시 부활시켰으며, 같은 해에 프랑스에서 섬을 되찾기 위해 2만명의 군대를 보냈으나 이 군대는 3분의 2가 사망했다.
1804년에는 아이티 출신의 지도자가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는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자 서반구 최초의 공화국이었다. 그러나 새로 설립된 공화국이 잘 굴러가지 않았는지 영국이 세인트루시아의 지배권을 도로 획득했다. 영국은 지배권을 다시 획득한 이후 노예제를 폐지했지만, 폐지 후에도 한주의 4분의 3을 전 주인 아래에서 일해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리카계 주민의 세가 유럽계 주민의 세보다 커졌고, 이를 바탕으로 1838년에 완전한 자유를 달성하게 된다. 같은 해부터 세인트루시아는 영국 소속 바베이도스의 관리를 받았으나, 1885년부터는 그레나다의 관리를 받게 된다.
프랑스와 영국의 세인트루시아를 얻기 위한 싸움은 처절해서, 세인트루시아가 프랑스의 마르티니크로부터 관리를 받게된 1674년부터 영국이 완전히 지배권을 얻은 1814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프랑스는 지배권을 6회 얻었고, 영국은 지배권을 4회 얻었으며, 양국 합의 하에 중립 지역으로 결정된 적도 2번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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