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을 횡으로 연결하는고대의 길로 세개의 간선이 있었다.초원길,오아시스길,바닷길이다. 초원길은 동서문명 교류의 주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며 유라시아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8,000㎞ 길이다.
서쪽의 끝인 카스피해 연안 혹은 발트해 남단으로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알타이 산맥 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 혼 강 연안으로 이어진다.
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지방에 이르러 그 동쪽 끝에 이른다. 그러나 이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유라시아초원의 동, 서 양끝은 만주와 헝가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들 지역은 유목과 농업의 혼합경제가 형성되었다. 유라시아 초원의 서남쪽 변두리인 중동지역은 초지로 연결되어 있다.
유목 기마민에게 카프카즈를 넘는 것은 쉬웠으므로 북쪽의 유라시아 초원에서 서남방 초지로의 이동이 반복되어, 두개의 다른 유목전통 즉, 북쪽의 인도-유럽계와 투르크-몽골계가 서남방의 셈족과 섞이게 되었다.
초원길이 기마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에 의해 개척된후 대체로 흉노와 몽골등 북방 기마민족들의 교역과 이동,정복활동에 크게 이용되었다.초원은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들만이 적응할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전용될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한 생활을 했던 유목민은 재갈과 고삐,말굽등의 마구와 말위에서 활을 쏠 수 있는 강력한 단궁을 조합해 강력한 기마 군단을 편성하면서 남쪽으로 펼처진 농경지대를 위협한다.
고대에는 기병의 위력이 굉장히 강했으며, 중국 사서에는 기병 하나와 상대하려면 보병 10명이 필요하다고 기록되어있으며, 한마디로 기병은 고대 전투의 탱크였다고 할 수 있읍니다.
따라서 고대 역사에서 중앙아시아 지역,기병을 중심으로한 유목민들의 군사력이 강력 했던 이유를 이로 인해 알 수 있읍니다 이러한 유목민이 7세기이후 이슬람제국과,11 세기의 셀주크 왕국과 13~14세기의 몽골로 이어졌다
특히 몽골고원이 있는 유라시아 동부의 광활한 초원은 투르크, 몽골, 퉁구스계통 유목민의 격렬한 각축장으로 이들 기마 집단은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흉노, 선비, 탁발, 유연, 돌궐,위구르, 키르기즈, 키타이(거란) 등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몽골이 훈족의 후손이라던가,터키가 돌궐의 후예라고 하며,몽골이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보이는 초원지대의 고속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몽골이 중국의 중원보다 티벳과의 활발한 교류의 이유 이기도 하다.
몽골 고원의 주도권:흉노 → 선비 → 유연 → 돌궐 → 회흘 → 견곤 → 거란 → 요나라 → 카마그 몽골 → 몽골 제국 → 원나라 → 북원 → 청나라 → 복드 칸국 → 몽골 인민공화국 → 몽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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