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국공내전은 만주의 국민당 군이 먼저 공산군을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 했다. 장개석은 의욕을 가지고 이 공산당 섬멸의 내전에 임했었다. 초반에 기세를 올린 장 개석군의 호 종남 장군은 20만 병력으로 모 택동의 근거지 연안을 점령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모택동은 연안의 손실보다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만주 확보에 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집중했다. 만주에서 동북 제 4야전군을 조직하고 있던 임표는 전쟁에 돌입했다. 그는 첫 전투인 사평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장개석군에게 대패를 당했다. 연이은 흑산 전투에서도 마찬가지 패배를 당였다. 그러나 패배를 당하던 임표군이 어느 순간부터 엄청나게 강해지기 시작했다. 전세는 급전했다. 밀리던 국민당군의 60군이 1948년 4월 부터 구 만주국 수도 장춘[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