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아프리카에도 문명화된 왕국이 있었다!

frog.ko 2020. 10. 10. 08:30

아프리카에의 사하라의 이북에는 수많은 문명의 발자취가 스쳐간 역사가 있다.

19세기 후반 식민지화 이전의 아프리카

북아프리카의 페니키아인들은 카르타고를 세웠고 메리니,하프스 오스만등 온갖 국가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져갔으며 찬란한 문명을 구가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지역 특성상 유럽인들과 접촉이 유럽 각국이리 만큼이나 매우 잦았으며,슬람의 문명을 받아들인 탓에 문화생활과 문명도 는 유럽인들보다 훨씬 앞서 있어서 풍요로운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 바로 사하라 이북 북아프리카이다.

 

하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선 우리가 아는바가 매우 적다. 사하라이남 즉, 서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강대했던 왕국이자, 유럽인들이 동경하던 땅인 말리왕국이 있었다.

 

말리왕조는 12세기에 만딩고족이라 불리우던 햄족의 한 갈래가 세운 왕조이다. 만사무사완은 말리 왕국을 1312년부터 1332년까지 통치하며, 말리의 황금시대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 시대에 가장 부유한 남자' 라고 불렀으며, 메카에 순례할 때에 노예 12,000, 아내 800황금 11톤을 싣고 가, 도중에 모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황금을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만사무사는 귀국하면서 많은 학자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 중에 포함된 에스파냐 출신의 건축가는 수도 팀북

투에 왕궁과 모스크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그이전에는 이미 무려 4세기에 건국된 가나왕조가 있었습니다만 말리왕조의 등장에 즈음하여 사라졌다

 

말리는 서아프리카의 중심부분에 위치하여 적도 이북 서아프리카 제일의 강이라고도 할수 있는 니제르강의 연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서아프리카의 온갖 물산이 모여드는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지금과는 달리 건기에도물이 마르지 않아 교역에 천혜의 유리함을 갖춘 도시가 태동해 발전하는데, 그곳이 말리왕조의 수도가 되니 팀북투(Tombouctu)라 이름붙여집니다.말리왕국의 전성기인 14세기에는 사하라사막에 금광이 꽤나 많았다.

 

게다가 남쪽에서는 코끼리의 상아가 셀수없이 모였고, 니제르강의 특성상 건천(乾川)이 되기 때문에 강바닥에 사금과 루비,사파이어등이 풍부했습니다.또한 사막지방이다보니 암염(돌소금)이 널렸다고 할정도로 풍부했다.

 

당시 유럽에서 소금을 구하려면 포르투갈의 암염광산, 사이프러스섬의 염전, 멀리 러시아의 암염광산 딱 이 세곳에서 사와야 했습니다. 가난한사람은 먹지도 못했읍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랍인에 비해 매우 미개한 생활을 하였으며 무어인(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들의 방에는 황금장식은 물론 비싼 상아, 각종 보석 등으로 치장되어 있는것을 보고,말리가 황금의 나라라는 전설을 믿게 되었다.

말리왕국은 이처럼 유럽인들도 놀랄만큼 부를 지니고 있었으나 16세기 말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3대 만사무사왕은 1324년 여러 종자와 함께 황금을 가지고 메카를 순례하는 도중에, 카이로에서 황금을 물쓰듯 하여 카이로의 금시세가 10년 이상 동안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15세기 초에 북방의 유목민 투아레그족과 남쪽 모시족의 침략을 받고, 1473년 송가이제국에 의해 말리제국은 멸망했다. 악숨왕국은 현재의 에티오피아의 전신으로, 아라비아반도와 강한 유대를 가졌고, 인도양 교역으로 번영했다. 6세기에 비잔틴제국과 손을 잡고 페르시아에 대항했으나 오히려 페르시아에게 멸망되었다.

 

서수단지방에서는 8세기에 가나제국이 번성하였고 16세기초에는 나이지리아 부근의 하우사족을 점령해 대서양에 이르고 북방에서는 투아레그족의 근거지 에일과 아가데스를 점령했다. 그러나 왕이 죽은 뒤 계속되던 계승자 싸움과 1590년 북방 모로코군의 남하로 송가이제국은 멸망했다.

 

동아프리카해안에는 7세기에 아라비아반도에서의 이슬람교도 후계자 싸움에서 패한 시아파 사람들이 오만에서 이주해왔다. 아랍인은 이 지역을 잔지바르라 하여 라무, 말린디, 몸바사, 펨바, 지바르, 킬와, 모잠비크, 소팔라 등지에 도시를 건설하고, 인도양 교역으로 번영했다.아랍인은 잔지바르의 산물인 금··상아·노예 등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인도로 운반하였고, 인도산의 직물류와 장식구슬, 중국제 도자기를 들여왔다.

 

141719년에는 중국 명나라의 정화가 대함대를 이끌고 동아프리카해안에 내항한 기록이 있다그리고 짐바브에는 돌만을 사용하고, 자연지형을 이용해 쌓은 아크로폴리스 유적지 등 뛰어난 건축물을 건축한 그레이트 짐바브에 유적이 있다11~15세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쇼나(Shona)왕국이 남긴 것임이 밝혀졌다.

만사무사 왕
그레이트짐바브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