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바스크인

frog.ko 2020. 10. 31. 06:36

바스크 지방은 큰 의미로는 스페인령의 남부 바스크 지방과 프랑스령의 북부 바스크 지방까지 통틀어 의미하기도 하고작은 의미로는 남부 바스크 지방 중에서도 아라바(Araba), 기푸스코아(Gipuzkoa), 비스카이아(Bizkaia) 3주로 구성된 바스크 자치 지방만을 의미한다. 스페인으로 부터, 강한 분리주의 성향을 보이는 지방이라 한다면 "스페인령 바스크 자치 지방"이다.

바스크인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민족 중 하나로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등 게르만·라틴족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문화를 유지해 왔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바스크어는 다른 어떤 유럽인들과는 다른 어족에 속하는지 알 수 없는 계통상의 고립어다. 확실한 건 인도유럽어족에는 전혀 속하지 않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괴악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스페인에는 약 240만명의 바스크인이 살고 있고 프랑스에는 약 20만명이 살고 있다. 바스크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이 정도라는것이고, 조상중에 바스크인이 있다거나 바스크계 성씨를 가지고있는 사람을 더 한다면 이보다 더 많아진다.

 

또한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중남미 지역을 포함한 필리핀과 카나리아 등 해외에도 바스크인들이 많이 이주했는데 바스크계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추리면 수천만명 이상에 달한다. 바스크계가 많은 지역은 바스크계 성씨를 가진 사람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바스크인들의 특이사항이 있다면 혈액형 중에서 Rh- 형 혈액형이 유달리 많다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 Rh- 형 비율은 16% 정도라고 하는데 바스크인들은 무려 36%나 된다.

 

확실한 것은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신석기시대에 피레네 산맥 부근에서 몇천년 이상 고립되어 살던 바스크민족과 인도유럽어족을 쓰는 이주민(스페인인, 프랑스인)들 간의 혼혈화된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언어 에우스카라(Euskara) 어족은 유럽의 다른 언어와 연관성이 없고 완전히 다른데다가 혼혈이 많이 되지 않은 바스크인들의 외모 또한 유대인과 함께 유럽에서 특징적인 외모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바스크족 어부들이 대서양에서 참치잡이로 부를 축적하는 와중에 신대륙까지 비공식적으로 갔다온 적이 여러번 있다.

 

특수부대에서 쓰는 베레모의 유래가 이들의 전통모자인데, 유럽에서 강한 불굴의 전투 민족으로 유명하다. 많은 전쟁을 거치며 바스크족을 건드리는 군대는 이기든 지든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로마군단이 바스크족을 동맹 부족으로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이베리아 반도곳곳의 다른 켈트족과 이베리아인 성읍들을 복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로마 군단병으로 입대해 오늘날 영국땅인 브리타니아 정복때도 활약했다. 샤를마뉴의 프랑스군 또한 이들에게 호되게 당했고, 이슬람이 서고트 왕국을 침공해 전선이 북부 피레네까지 밀렸을 때도 방어에 한 획을 담당했다.

 

바스크의 나바라 왕국의 산초 3세 왕은 주변의 아라곤과 카스티야등을 상속 받거나 혹은 복속시키는 방법으로 이베리아 반도 북반구를 통일 당시 이슬람 세력에 굉장히 심각하게 위축되던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세력이 반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의 아들들이 나라를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으로 3개로 쪼개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아들들이 나바라의 큰형을 연합공격해서 나바라의 영토 상당수를 빼앗아버렸다.

 

이것으로 나바라라는 나라는 약소국으로 몰락했다가 끝이지만 여기서 문제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합쳐져서 탄생한게 지금의 스페인이라는 것이다. 즉 사실상 바스크족이 세운 나라에서 지금의 스페인이 탄생했다.

 

프랑스 남부 카타리파 준동에 프랑스의 용병으로 참전에 활약한 바 있으며, 위그노 전쟁에 프랑스 왕실의 외가로 참전해 왕가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그랬고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점령시 이들의 게릴라 전술로 힘겨워 했다.

 

최근까지도 ETA 등 테러 단체로 활동한 바 있다. 이들은 이슬람을 상대로만 700년 동안 방어 전선을 형성하였고, 통합 스페인 왕국 창립이후 16~18 세기 유럽 최강 스페인 육군의 일익을 담당했다.

 

통합 스페인 왕국의 전신인 아라곤 왕국, 카스티야 왕국, 나바라 왕국의 왕가들은 모두 바스크 민족의 왕이였던 산초 3세의 후손들이다. 이렇게 스페인 제국 출발의 핵심에는 바스크 민족이 있고 스페인계와 독일계 합스부르크 가문에도 이들의 혈통이 들어간다.

게다가 프랑스에 여왕을 시집 보냄으로써 결혼 동맹으로 동군연합이 되었고 위그노 전쟁에서 부르봉 왕가의 외가로써 참전해 부르봉왕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스크인들이 유럽 강대국들과 결혼 동맹과 군사적 지원에 성공한 결과 많은 유럽 강대국들의 왕가에 바스크인의 핏줄이 흘러서 현재까지도 바스크족을 소수 민족이라 낮춰 보는 국가는 없고 스페인 내에서도 꽤나 위상이 높다.

 

바스크 지방은 원래 나바라 왕국의 영토였지만 1512년 스페인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다만 통일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연합체였기 때문에 지방 분권성이 강했고 다른 지방들이 그러하듯 바스크 지방 또한 폭넓은 자치를 누렸다. 특히 스페인의 군주들은 카탈루냐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 바스크 지방의 지원을 받았고 그 대가로 바스크 지방에는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

 

19세기 말 산업 혁명 시기 영국 자본이 많이 유입되면서 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했고 금융 쪽에 강하다. 스페인에서 경제 수준이 월등히 높은 지역이고 부자 동네임을 자처하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보다도 1인당 GDP가 훨씬 높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원래 바스크 지역은 자치권 확대 약속 때문에 공화 진영에 가담했지만 공화 진영 중 가장 보수적 색채가 짙은 지역이었다.

 

1937년에 국민군이 바스크 지역을 원정할 때 바스크 지역 군인들에게 평화적인 대우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그 약속은 무참히 짓밟혔다. 유명한 게르니카가 바스크 지방의 도시다. 프랑코 정권 수립 후에는 중앙 집권화 정책 때문에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바스크인의 무장 투쟁 단체인 ETA가 등장해 2017년에 해체될 때까지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빌바오에 있는 아틀레틱 빌바오, 산 세바스티안에 있는 레알 소시에다드, 비토리아의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는 지역의 대표적인 구단으로 바스크 더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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