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유목민족 역사

frog.ko 2020. 11. 3. 12:14
주, 춘추전국, 진, 한 :흉노의 전성기
위,오,초 삼국, 위진 남북조 : 선비의 대륙정착, 북위 건국 
수, 당, :돌궐, 거란의 세력확장기
송 : 거란(요), 여진 (금)의 강성기 
원 : 몽골의 세계제패
명 :여진, 만주 (후금)의 2차 발흥
청 : 만주족의 지배
중국연표

 

훈족의 영토 -- BC 209 년 ~ AD 216 년

훈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훈족이 중앙 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며 이들을 이란계 유목민들의 영향을 받은 투르크족으로 보고 있다.

 

현대 역사가들은 4세기에 유럽 경계에 나타난 훈족을 기원전 3세기와 서기 2세기 사이 오늘날 북방 스텝 지역에서 중국을 침입했던 흉노족과 관련시켰다.

 

흉노는 기원전 4세기부터 5세기까지 북아시아 스텝지역에 존재한 유목제국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알타이-샤안 산맥 지역에서부터 동부로 진출하여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중화인민공화국의 내몽골 자치구(內蒙古自治區), 간쑤 성(甘肅省),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까지 지배하였다.

 

한나라와 군사적 충돌을 겪기도 하였고, 때로는 조공무역이나 결혼동맹을 하는 등 복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전한의 공격으로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고고학계와 사학계에선 흉노족은 몽골계가 아닌 튀르크계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기원전 60년경 흉노에서는 선우 자리를 놓고 수십개의 부족으로 분열되어 내전이 일어났으며 호한야 선우(呼韓邪 單于)는 기원전 51년 한나라의 지원을 얻었다. 한나라의 지원을 받은 호한야에 의해 흉노는 재통일되었으며 전한과 화친을 맺었고, 이는 전한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때 질지(郅支) 선우는 서흉노를 이끌었는데, 후에 동흉노에 패하여 다시 흡수되었지만, 일부 집단은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왕망(王莽)이 신()을 건국한 직후 흉노와 중국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어 이 시기에 흉노가 신나라를 침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한이 건국된 시점에서는 흉노는 수십개 부족으로 다시 분열된 상태였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는데 이중 남흉노는 후한에 복속되어 오르도스 및 산시 성(山西省) 일대에 거주했으며, 북흉노는 몽골 고원에 남았다. 89년에 후한과 남흉노의 연합군은 북흉노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며 북흉노의 일파는 서방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서방으로 향한 북흉노를 훈족으로 보기도 한다. 북흉노의 멸망 직후 몽골 고원에는 선비(鮮卑오환(烏桓) 등의 다른 유목 부족들이 성립되었다.

 

남흉노는 중국의 번병(番兵) 역할을 하며 오르도스 및 산서 일대에서 북방을 방어하였다. 후한은 남흉노의 군대를 용병으로 활용하였고 선비, 오환, () 등을 토벌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선우에 대해서 흉노의 여러 유력자들은 많은 불만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선우와 흉노의 유력자들 간에는 끊임없는 알력이 존재하였다. 또한 후한 말기에 오면 남흉노에게도 간섭하여 선우의 직위는 크게 실추되고 위태로워졌다. 삼국 시대에는 조조(曹操)에 의해 흉노의 선우는 유명무실하게 되고 흉노는 5부로 재편되어 중국의 실질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후한 말기에 오면서 남흉노는 모두 남하하여 대다수가 한족과 동화되었다. 후한의 유표는 고대 흉노 모계 조상 가운데 한나라 공주 유()씨가 있었기 때문에 유()씨로 창성하였다. 그의 후손 서진(西晉) 말기, 흉노의 좌부수(左部帥) 유연(劉淵)은 중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산서 일대에서 한()을 건국했다.

이는 흉노가 과거 한나라와 형제의 맹약을 맺은 것을 근거로 한 것으로, 유연은 형인 한나라를 대신하여 한나라를 계승할 것을 천명하였다. 흉노의 한나라는 서진을 멸망시키고 화북 지역을 초토화하여 지배권을 얻었다. 이후 흉노의 일파인 갈족(羯族)의 석륵(石勒)이 후조(後趙)를 건국하자 국호를 조(: 후조와의 구분을 위해 보통 前趙라고 부른다.)로 고치고 화북을 양분하여 서로 물고 물리는 전쟁으로 대립하였다. 329년에 후조에 의해 전조는 멸망하였으며, 후조 역시 351년에 멸망하였다.

 

407년에는 흉노 철불부(鐵弗部)의 혁련발발(赫連勃勃)이 산시 성(陝西省) 일대에서 하()를 건국하여 선우를 자칭하였으나 431년에 멸망하였다. 이로써 흉노는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선비족의 일파인 유연(동호계열(東胡:동녘 동, 오랑캐 이름 호)라 쓰며 동쪽 오랑캐란 뜻이다. 돌궐과 흉노가 있던 몽고 초원의 동쪽에 있는 만주 지역에 살고 있었다)북위가 건국될 즈음에 이르러 독자 노선을 탔다. 6세기 무렵, 자신들에게 복속되어 있던 돌궐족의 반란으로 멸망하고 만다.

 

이어 6세기 중반 이후 몽골제국 건국전인 12세기 초반까지 활약했던 국가로 투르크(돌궐, 552~745), 위구르(745~840), 키르키즈(840~923), 거란(901~1125) 등이 있다. 이후 몽골제국이 등장하였고, 북원을 거쳐 청나라의 지배하에 있다가 1921년 몽골인민정부가 독립을 선포했다.

 

몽골고원에서는 선비족이 선비제국을 건설한 이후 그 후예가 유연·북위·전연·후연 등을 각각 세웠다. 6세기 중엽 이후 돌궐·위구르·키르키즈 등 투르크족이 몽골고원을 장악하면서 선비족은 몽골고원 외곽으로 밀려 났으나 투르크 세력이 약화되는 8세기 중반부터 다시 점차 고원 중심부로 돌아왔다. 10세기 들어서는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이 몽골고원을 완전히 차지하게 했다.

 

몽골족은 투르크족에 의해 몽골고원에서 쫓겨난 선비족의 일파로 보여진다. 이들은 몽골고원 동부의 에르구네 쿤의 몽골인, 유연의 후예인 타타르 소칸국의 몽골인, 선비계 실위인들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10~11세기 고비사막 남북초원에 많은 몽골계 부족연합체가 형성되었고, 11~12세기에는 전몽골,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 홍기라트, 옹기라트 등의 부족이 몽골고원의 큰 세력이었다.

 

※몽골족:오늘날 몽골인의 전신은 동호족 계통에 속하는 몽올실위로 몽골을 지배했던 흉노족, 돌궐족의 혼혈 민족이다. 중앙아시아 북부를 장악한 흉노족은 크게 아리아계 유럽인종과 몽골로이드 아시아 유목 민족이 있었다. 이들을 튀르크족이라고 부른다. 흉노 무덤에서는 아리아계 유럽인종과 몽골로이드 유골이 함께 출토되었다. 튀르크족이 몽골과 동아시아를 휩쓸고, 튀르크족의 지배층이 동호에 남게 되면서 이 시점에 동호족의 일파는 현재 몽골 지역인 바이칼, 울란바타르로 이동하였다. 이 동호족의 일파들이 오늘날 몽골인의 전신인 몽올실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전몽골족에서테무친 보르지긴이란 영걸이 나타나 케레이트의 지지를 받아 메르키드를 정복하고 이후 타타르, 홍기라트, 케레이트, 옹기라트, 나이만을 차례로 격파하여 몽골초원을 통일했다. 테무친은 120644세의 나이로 몽골의 대칸에 올라 칭기스칸이라 불렸고, 이로써 대몽골국이 출범했다.

 

서양의 역사에 흉노(훈족)가 등장하는 것은 서기 290년 전후다. 카프카즈와 터키 동부에 자리잡은 아르메니아의 군대에 훈족이 등장한다. 이때 훈족은 알란족과 함께 아르메니아 군에 복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흉노가 엄체(알란)을 공격하던 시기와 대략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흉노가 엄채인(알란족)을 포용해 아르메니아의 용병부대로 투입된 것이다.

 

1세기말에 한족과 남흉노에 쫓겨나 텐산산맥을 넘은 흉노족은 200년의 세월을 보내며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며 현지의 다양한 종족을 정복하고 융화되면서 풍습도 현지화되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이라는 새로운 토양에서 배양된 흉노족은 여러 종족과 혼인하면서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동서양 역사의 레이더망에 200년간 사라졌던 흉노는 4세기에 훈족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서양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훈족들은 당시에 스키티아라고 알려진 지역의 일부였던 볼가강 동쪽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처음 기록되었다. 훈족의 정착은 인도이란인 계열 민족인 알라니족들의 서쪽으로 이주에도 관련이 있다. 370년에, 훈족들은 볼가강에 이르렀고, 로마 제국의 국경 밖에 살고 있던 고트족과 다른 게르만족들을 정복하고, 많은 게르만족들을 로마 영토로 도망치게 한, 이들은 430년에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유럽에 거대한 영토를 세웠다.

 

특히나 아틸라 왕의 지도하에서, 훈족들은 동로마 제국에 잦고 파괴적인 약탈을 벌였다. 451년에는 서로마 제국의 갈리아 속주를 침입하여,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로마와 서고트 연합군과 교전했으며, 452년에는 이탈리아를 침입했다. 453년에 아틸라가 죽은 후로, 훈족들은 로마를 향한 위협을 멈추었고 네다오 전투 패배 후로 영토의 상당량을 상실했다.

 

훈족의 후예들이나 유사한 명칭을 가진 후계자들은 대략 4-6세기에 동유럽과 중앙 아시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남쪽과 동쪽, 서쪽의 이웃한 민족들에게 기록되었다. 훈족의 변형적 명칭들은 코카서스에서는 8세기 초까지 기록되었다.

 

훈족의 압박으로 인한 게르만족 이동
투르크계 민족

 

선비
유연:몽골계  유목민족으로 선비(탁발족) 더 깊이 파면  동호 계열 

 

7세기 중반 돌궐

 

7세기
부하라 전투 직후 서돌궐의 강역.
 동돌궐 601-627
서기 700년 무렵, 거란족의 영토
선비의 후예 거란
5대10국

 

거란은 한자로 ‘계단(契丹)’이라고 쓰는데, 원래 이름은 ‘키타이’로, ‘칼날’이라는 뜻이다. 거란은 대체적으로 선비족에서 갈려져 나온 집단이 흉노의 남은 잔당들을 흡수한 데서 기원했다고 본다. 선비족은 본래 동호족의 후손으로 몽골 계통의 유목민이다. 이건 나중의 일이지만 칭기즈칸 시대 거란족은 몽골족과 언어와 풍습이 거의 같았다고 한다.

 

몽골고원은 흉노(BC3C~AD2C), 선비(1~3C), 유연(4~6C), 돌궐(6~8C) 등이 차례로 지배하다 위구르가 이어 받았다. 흉노의 후예 위구르는 돌궐 혼란기를 틈타 세력을 키워 745년 돌궐제국을 멸망시키고 위구르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요나라(916~ 1125년), 원나라(1206 ~ 1368), 청(1635 ~ 1912)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