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유럽, 사람은 아프리카어족
몰타(Malta)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남쪽으로 93㎞,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동쪽으로 284㎞ 떨어져 있는 지중해 정중앙에 있는 섬이다. ‘지중해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몰타공화국(Republic of Malta)! 제주도의 6분의 1 크기(강화도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작은 나라는 세 개의 유인도, 작은 무인도들까지 합쳐 총 6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유인도 중 가장 큰 몰타섬은 문화, 상업, 행정의 중심지이고 두 번째로 큰 섬인 고조(Gozo)는 몰타섬에서 25분 거리의 한적하고 조용한 섬나라이다.
수도인 발레타의 인구는 7천 명으로 작은 도시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규모 있는 도시다. 위성 사진이나 지도에도 보이듯 몰타 동부 지역에 모여있는 주요 도시들이 거의 다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발레타, 실레마, 마르사, 비르키르카라 같은 작은 도시들이 모여 있지만 시가지가 모두 이어져 있다.
주민의 대다수는 셈어족에 속하는 몰타인이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 아시아 어족의 언어를 유일하게 사용하는 유럽의 나라이다. 문화는 대부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라틴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몰타는 고대부터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유럽 주요 문명들이 몰타를 거쳐갔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것도 7000년의 역사가 남긴 고고학적 유적지들이 섬 전체에 남아 있다. 몰타 여행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 중 하나는 성요한기사단(몰타기사단)이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섬이지만 모래사장이 깔려 있는 해변은 많지는 않다. 해안선 상당 부분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 환경과 지중해상의 위치가 과거 몰타가 요새로 기능하도록 하였다. 해상 교통은 넘쳐나는 길목을 지키는 관문인데 접근이 가능한 (침략이 가능한) 해변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니 요충지였던 셈이다.
기원전 7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가 된 몰타는 페니키아 본토의 도시들이 약화되자 그 후신인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다. 카르타고가 시칠리아 섬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몰타는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를 잇는 무역 기지가 되었으며, 이 와중에 그리스 문화의 많은 요소가 도입되기도 했으나, 섬 주민은 페니키아계였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몇백 년에 걸쳐 지중해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뒤, 6세기 동로마 제국이 다시 섬을 점령했으나 이후 사라센 해적들의 공격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서기 870년에는 아랍 무슬림 아글라브 왕조에 점령당했다. 이후 많은 아랍인들이 해적 기지 삼아 섬에 정착했으나 1091년 시칠리아의 노르만인들이 몰타를 점령하고, 섬 주민들을 다시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1522년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 술레이만 1세(1520~1566)가 로도스 섬을 정복하자 그 섬에 자리 잡고 있던 구호기사단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했다. 이때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인 카를 5세(카를로스 1세, 1516~1556)가 1530년에 기사단에게 매년 매(hawk) 1마리를 공물로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몰타를 사실상 무상 증여했다. 이 때부터 몰타는 성 요한 기사단의 영토가 되었다.
몰타 기사단은 이곳을 거점으로 과거 로도스 시절을 잊지 않고 사라센 선박과 해적선 모두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이들이 자리 잡은 몰타 섬은 북아프리카의 항만과 항로들을 기습하기 최적화된 곳이라서 오스만 제국을 곤란하게 했다.
결국 술레이만 1세는 1565년 몰타를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2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지만 세 달에 걸친 공방전 끝에 함락에 실패한다. 당시 방어 병력은 기사단원 500~600 명에 현지 징집병과 전투 직전에 고용한 용병 등을 포함한 6~8천 명 정도였다.
이 승리로 기사단은 명성이 유럽에 퍼져, 몰타의 지명도도 올라갔다. 몰타 공방전 이후 기사단에 입단하는 지망자도 늘어나고, 스페인의 지원을 받는 교황령을 위시로 한 가톨릭 국가들의 기금 원조도 늘어나 기사단은 사라센 해적과 상선들을 막아낼 수 있었다. 몰타 기사단의 활동은 17~18세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나폴레옹이 이집트로 원정 가는 과정에서 기사단의 항복을 받아내서 점령 직후 기사단은 몰타에서 퇴거한다. 그러나 시칠리아 왕국의 요청으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몰타를 점령했다. 이후 빈 회의(1814~1815)의 결과 몰타의 영국 영유가 승인되어 몰타는 영국 영토가 되었다. 다시 쫒겨난 기사단은 교황령이 받아주어 로마로 망명해, 이 때부터는 무력 사용을 포기하고 본업인 구호 사업에 충실하게 되었다.
몰타공화국으로 독립한 것은 1964년이고, 2004년부터는 유럽연합(EU)에 가입됐다. 유로가 통용되고 사람들은 영어와 몰타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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