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渤海)는 고대-중세 동아시아의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방, 연해주 일대에 위치한 군주제 국가이다. 한국사에서는 8~9세기 남방의 신라와 함께 200여 년간 남북국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한국사의 역대 국가들 중 면적이 제일 넓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지난 698년에 말갈인과 옛고구려 유민들이 지금의 중국 만주 일대에 세운 국가. 한반도 북부와 현 중국 만주 및 현 러시아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남부 지역에 228년간 존속했는데 926년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기록과 정보가 적어서 아직도 베일에 싸인 면이 많은 나라이며 오늘날 역사 귀속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국가다. 해외에서도 고구려는 한국사로 인정하는 여론이 대부분이지만 발해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하는 편이다.
국호 '발해'는 이 국가의 랴오닝성의 요하 지역이 접한 바다를 이르는 말인 보하이 해(渤海)에서 유래했다. 발해라는 국호를 정하기 이전에는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신들을 '고려(高麗)' 또는 '진국(震國)'으로 칭했다. 또한 왕을 '가독부(可毒夫)라고 칭했는데, 이는 발해 고유어의 음차라고 한다. 그런데 정혜공주묘비에 '황상'이라는 표현과 '황후'를 사용한 묘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외왕내제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발해를 고구려와 함께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여, 당나라의 지방정권 혹은 말갈족의 나라로 주장하는 동북공정을 진행 중에 있으며, 고구려와 발해 성곽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판단하여 복원 계획에 포함시키거나, 당나라 황궁인 함원전보다 더 컸다는 상경성 제2궁전지는 중국 정부에서 비공개로 보수 작업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대한 사진도 공개되지 않아 더 연구해야 될 부분이 많다. 지금은 중국 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가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짤막한 발해 비문 정도를 통해 일부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남한뿐 아니라 북한 고고학계에도 철저히 비공개한다고 한다.
후발해
발해가 멸망한 926년 이후에도 929년 5월에 고정사(高正詞)가 발해 사신으로 후당(後唐)에 사신으로 파견되는가 하면, 송대(宋代)에는 ‘오사성발해왕(烏舍城渤海王)’이란 칭호가 공식적으로 송나라에서 사용되어 후발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오대(五代) 및 송대에 외교 활동을 벌였던 ‘발해’를 ‘후발해(後渤海)’ 또는 ‘오사성발해(烏舍城渤海)’라 부른다. 자료 부족으로 후발해의 건국 연대 및 지속 기간, 그리고 권력 기구 및 통치 세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견해들 모두 후발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후발해(926년 ~ ?년) |
?대 ?년 |
정안국(938년 ~ 986년) |
2대 48년 |
연파국(975년 ~ 995년) |
1대 20년 |
올야국(995년 ~ ????년) |
??대 ??년 |
흥료국(1029년 ~ 1030년) |
1대 1년 |
고욕국(1115년 2월 ~ 7월) |
1대 4개월 |
1대 4개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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