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공국(Grand Duchy)로 예전부터 존재했던 유서깊은 국가다. 1867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다.
면적은 2,586㎢로 제주도의 1.4배이며, 인구는 2018년 1월 기준으로 60만명이다. 1인당 GDP는 12만5,364 달러로, 세계은행, IMF 등 국제기구의 공식 통계상 1위다. 금융업과 서비스업을 발달했다. 프랑스어, 독일어, 룩셈부르크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정식 국명은 '룩셈부르크 대공국'으로, 대공이 다스리고 있다. 원래 이 땅을 다스리던 룩셈부르크 가문은 한때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까지 차지하고, 헝가리와 보헤미아까지 차지했지만 결국은 가문이 사라지고 지금은 지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프랑크 왕국이 셋으로 분할되었을 때 잠시 장남 로타르의 영지인 중프랑크에 속했다. 중프랑크의 영토 중 알프스 이북 지역은 로타르의 이름을 따서 로타링기아(로트링겐)으로 불린다. 로타르가 죽고 로트링겐을 두고 서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의 분쟁이 벌어졌으나 최종적으로 동프랑크 왕국을 계승한 독일 왕국에 병합되었다.
이후 브라반트 공국(브뤼셀 백국), 림부르크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플란데런 백국 등이 있던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 1세가 트리어의 성 막시민 수도원으로부터 룩셈부르크 일대의 영토를 얻어내어 룩셈부르크 백작이 되어서 다스렸다. 지크프리트 1세가 세운 룩셈부르크 가문은 결혼 동맹 덕분에 14세기 초 보헤미아 왕국을 획득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에까지 올랐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아예 본거지를 보헤미아의 프라하로 옮겨버렸다. 룩셈부르크는 브라반트 공국, 림부르크 공국, 룩셈부르크 공국 등에 합쳐지게 되었다.
1437년 룩셈부르크 가문의 대가 끊겼고, 부르고뉴 공국이 새로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다. 이후 결혼 동맹을 통해 1477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부르고뉴 공국을 상속받아서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을 형성했다. 카를 5세가 퇴위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둘로 나눠졌을 때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에 있던 룩셈부르크는 저지대의 영토와 함께 스페인 합스부르고 왕조의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상속되었다.
17세기에 루이 14세에 의해 잠시 프랑스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에게 귀속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대프랑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1794년 프랑스가 벨기에와 함께 룩셈부르크를 점령했다.
룩셈부르크가 공식적으로 독립한 것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후인 1815년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열린 빈 회의의 골자는 유럽 전역에 구체제(앙시엥 레짐)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빈 회의에서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등은 프랑스를 억제하기 위해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를 독립시켰고, 이에 따라 룩셈부르크에 대공체제가 수립되었다.
1839년 런던 조약에 의해 서쪽 영토 절반을 벨기에에 할양해야 했다. 1842년 독일 관세 동맹에 가입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인 1867년 독일 연방을 탈퇴하고 영세 중립국의 지위를 받았다.
1890년 동군 연합이던 네덜란드에서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하면서 룩셈부르크는 직위 계승 방식에 따라 방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 대공에게 상속되어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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